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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No제목 등록일
381초과회복 2022-09-25
운동역학 용어 가운데 “초과회복(Supercompensation)”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이 말은 운동선수가 체력강화를 위하여 고강도 트레이닝을 하면 근육이 피곤해지는데 이후 근육의 회복을 위하여 휴식을 취합니다. 이때 휴식 후 몸이 회복되는데, 처음 훈련을 시작할 때보다 체력이 증가한 상태로 회복됩니다. 이러한 회복을 초과회복이라 말합니다. 즉 처음보다는 더 향상된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초과회복이란 단어는 다양하게 사용합니다. 경제에도 초과회복을 말합니다. 지난 주간에 제23회 세계지식포럼(WKF 2022 - The World Knowledge Forum)이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주제는 “초과회복 – 글로벌 번영과 자유의 재건”입니다. 세계지식포럼은 한국의 매일경제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국제적 포럼입니다. 23회 동안 5000여 명의 유명 연사들이 강연을 했습니다. 빌게이츠, 부시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블레어 영국 총리, 샌더슨 교수, 등입니다. 금년 2022년 포럼의 주제인 <초과회복>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움츠렸던 세계 경제에 새로운 회복을 뜻합니다. 코로나로 마비된 세계 자유무역 경제에 더하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식량과 에너지 가격상승에 속수무책으로 추락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당장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휘발유 가격상승으로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주유소에 가기가 짜증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지혜를 모아 우리의 경제 회복에 힘을 써야 할 때입니다.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코로나 이전보다 더 발전한 “초과회복”을 원하는 것입니다.
초과회복이라는 말을 우리의 신앙에 적용시킨다면, 그동안 코로나로 어려워진 우리의 참된 예배가 이제는 코로나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예배 회복은 단순한 옛날로 돌아가는 회복이 아니라 발전된 모습의 초과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욥기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의 말처럼 욥이 고난 이후 그의 믿음이 정금 같이 된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이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고난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하여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예배의 회복에 더 발전된 초과회복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모든 부분에 더 나은 회복, 초과회복이 있기를 우리 모두 바랍니다.
380세우는 교회공동체 2022-09-18
중국의 한자는 어휘를 풀어 뜻을 나타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함께 한다”는 동(同)자의 뜻을 풀어보면, 성읍에서 멀리 떨어진 국경의 성곽을 나타내는 “경”(?-멀 경)과 출입구를 나타내는 “구”(口-입 구)와 하나라는 “일”(一 하나 일)이 합쳐진 말입니다. 즉 마을에 입구가 하나뿐이라 그 문으로 같이 드나든다는 뜻으로 같을 동(同)을 씁니다. 여기에 큰 “대”(大)를 붙이면 대동(大同)이라는 말이 됩니다. 크게 뜻을 같이한다는 말입니다. 중국의 <예기(禮記)>에 대동사회(뜻을 같이하여 크게 함께하는 사회)를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을 개인이 사유화하지 않으며, 노인은 안락하게 오래 살며, 젊은이는 자기의 역량을 발휘하는 직업이 있으며, 어린아이는 안전하게 길러지며, 재물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며 버려지거나 사치스럽게 사용되지 않으며 함께 나누어 쓰며, 간사한 모의나 도둑이나 절도범이 없어 대문을 열어놓고 안심하고 사는 사회를 대동사회(大同社會)라고 합니다. 1917년 민족의 지도자인 이상설, 신채호, 신규식, 선생 등 14명이 상해에 모여 민족의 대동단결(大同團結)선언을 합니다. “대동단결하자는 의견은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소문만 요란하고 일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합동하자고 하지만 그 실행에 이르러서는 힘이 미치지 못하니 그 죄를 서로 떠넘긴다” 이제는 싸우지 말고 모든 단체들이 합동하여 일치단결하여 재정을 모으고 인물을 모아 대의명분에 맞게 정부를 세우자고 주장하며 7강령과 함께 대동단결을 선언합니다. 그 후 1919년 독립선언서와 3.1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상해 임시정부를 조직합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 교회가 성도 간에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사는 공동체를 이루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권면이나 위로나 성령의 교제가 있으면 마음을 같이하고 한마음으로 하고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교회공동체는 마음을 같이하고 함께 이루어 가는 공동체입니다. 코로나 이후(Post-Corona) 교회에서 일어나는 탈교회화 현상은 예배에 모이지 않으며 혼자 방송으로 예배하며 공동체와 함께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함께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참된교회는 복음 안에서 대동(大同)의 마음으로 함께 세워가는 공동체입니다. 부족한 것이 있어도 서로 사랑하며 이해하고 함께 세워갑시다.
379직분자 2022-09-11
10월 30일 주일예배 후 직분자를 선출하려 합니다. 매번 일꾼을 세울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직분자의 자격입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누가 자격이 있느냐고 물으면 자격이 있다고 대답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부족해도 하나님이 주시는 직분이기에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성경은 직분에 대하여 딤전3:1-7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교단 헌법에서 말하는 장로에 대한 자격은‘만 35세 이상 된 남자 중 입교인으로 흠 없이 5년을 경과하고 상당한 식견과 통솔력이 있으며 딤전3:1-7절에 해당하는 자로 한다’입니다. 맡은 직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교회의 신령적 관계를 총괄한다. 2) 도리 오해나 도덕상 부패를 방지한다.(성도들의 신앙을 살펴 이단이나 도덕적으로 죄악을 범하는 자를 권면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당회에 보고한다. 3) 교우를 심방하되 위로, 교훈, 간호한다.(병든 자. 상을 당한 자, 어린이를 가르치고 간호하는 일에 평신도보다 의무와 직무상 책임이 중하다) 4) 교인의 신앙을 살피고 위하여 기도한다. 5) 특별히 심방할 자를 목사에게 보고한다. 이러한 직무를 이행하기 위한 직분이 장로의 직분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직분자를 세울 때 강조되는 점은 1) 말씀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실천하는 자를 직분자로 세워야 합니다.(성경읽기) 2) 모든 예배에 참석하고 늘 기도하는 자를 세워야 합니다. (모든 예배참석, 기도생활) 3) 교회 행사와 봉사에 적극적인 사람으로 세워야 합니다. (각 부서에서 봉사) 4) 물질과 생활로 감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으로 세워야 합니다. (감사, 십일조) 5) 교회 부흥을 꿈꾸는 사람으로 자원하는 자를 세워야 합니다. (긍정적 생각, 서로 사랑) 2022년의 직분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위하여 봉사할 사람이 선출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378헛된 일에 열심 내지 맙시다 2022-09-04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근심과 걱정을 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우리가 근심하는 문제가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8%정도 밖에 안된다는 통계수치를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어니 젤린스키(Ernie J. Zelinski)는 그의 저서《모르고 사는 즐거움》중에서 다음과 같이 걱정에 대한 통계를 내어놓았습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 일.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적정, 22%는 사소한 고민,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데일 카네기가 쓴 <인간관계론>‘걱정을 멈추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라’이라는 글에서 <톱밥을 켜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필라델피아의 어느 잡지사의 편집장으로 일하던 프레드리 셰드는 대학 졸업식에서 <톱밥을 켜지 말라>고 연설을 합니다. 톱은 나무를 자를 때 쓰는 도구이지 톱밥을 켜는 연장은 아닙니다. 이 말의 뜻은 졸업생들이 지나 과거의 일 때문에 근심하고 걱정하면서 미래에 도전하지 못한다면 톱으로 톱밥을 켜는 것이라고 교훈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맹목적으로 노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노력할 가치가 없는데 열심히 하는 일을 관용적으로 <삽질한다>라고 표현합니다. 톱으로 톱밥을 켜는 일, 쓸데없이 삽질하는 일, 지나간 버스에 손수건 흔드는 일,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리려는 일은 결과가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헛수고 하는 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왕국이 바벨론에 멸망할 것을 예언하면서 정치적으로 애굽을 의지하지 말며, 바벨론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52:2에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라고 말합니다. 바벨론을 막으려고 애굽 군대에 돈을 주고 외교정책을 펴는 일은 헛수고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는 것은 헛수고하는 일이며, 삽질하는 것이며, 톱으로 톱밥을 켜는 일입니다. 2022년 가을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롭게 기도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여호와께 돌아오면 우리의 영이 살 것입니다. 세상의 헛된 일에 수고하지 말고 톱으로 톱밥을 켜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오며 우리의 영이 살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돌아오는 기도하는 가을철이 되기를 바랍니다.
377기도 (pray) 2022-08-2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소요리문답 제98문항은 ‘기도란 무엇입니까?’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은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고하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을 간구하고, 우리의 죄를 자복하며, 그의 자비하신 모든 은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로 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요약하여 설명한다면 (1)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에서 삶을 살 때 언제나 형통하며 풍요롭지만 않습니다. 고난, 환란, 핍박으로 궁핍한 삶을 살 때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간청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또한 더 많은 주의 일을 하기 위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간청의 기도를 드립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마7:7) (2) 기도 중 간청의 범위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간청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약4:3). (3) 언제나 기도자는 자신의 죄를 먼저 자복해야 합니다. 악한 마음을 품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간청의 기도를 드리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악한 죄가 가득하면 기도 응답이 없습니다.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잠15:29) (4) 기도자는 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기도의 마지막 단계는 감사입니다. 주신바 은혜에 감사하고 그리하지 않을지라도 감사하는 것은 올바른 기도자의 자세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죠지 뮬러(George Muller 1805-1898)는 독일의 할레 대학에서 경건운동을 배우고 영국의 브리스톨의 빈민가에 들어가 고아들을 돌보며 경건한 삶을 산 <기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목사님입니다. 일생 5만번 이상 기도 응답을 받은 열정의 기도자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열심 있게 합니다”코로나로 어려운 때 우리 모두 하나님께 열심 있는 기도자들이 됩시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응답이 있을 때까지 지치지 말고 기도합시다.
376원수를 사랑하라 2022-08-21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안이숙 사모(해방 후 미국에서 김동명 목사님과 결혼)가 쓴 수기형식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 내용 중에 <일본 여자 포주> 이야기가 나옵니다. 안이숙 여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국회의사당에 기독교 탄압과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인쇄물을 뿌리다 체포되어 국내 평양 감옥으로 이송되어 6년간 옥중생활을 했습니다. 안이숙 여사는 수감 생활 중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감옥에 오신 주기철 목사님과 이기선, 주남선, 한상동 목사님, 오윤선, 방계성 장로님 등을 만났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도둑놈, 사형수, 사기꾼, 술집 여자, 기생 등 다양한 사람들을 감옥에서 만났습니다. 안이숙 여사는 감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순진한 여성들을 술집에 팔아넘긴 악질 일본 여자 포주가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너무나 미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을 술집에 팔아넘긴 일본인 포주를 죽이려 했습니다. 안이숙 여사는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하나님 이 여자까지 사랑해야 합니까? 이런 여자까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답은 일본인 악질 포주까지 사랑하라 그리고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복음의 위대한 능력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이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산에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실천해야 하는데 과연 실천할 수 있을까? 원수가 눈앞에 있는데 미운 감정을 억제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원수 사랑을 실천하려면 (1)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면 원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값없이 천국에 들어가는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에 비교하면 원수 사랑의 실천은 작은 것입니다. (2)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공의로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기도할 뿐입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현상 중 하나인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원수까지 사랑하는 참 제자 삶을 실천합시다.
375광복절(光復節) 2022-08-14
오늘은 광복(光復) 제77주년 되는 광복절 기념주일입니다. 광복절(光復節)은 1910. 8. 29. 일본의 강압적 조약인 한일병탄조약으로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지 35년 만에 1945. 8. 15. 나라의 주권을 회복한 날입니다. 일제강점기 35년간의 시간들은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교육 등 모든 부분에 고난과 역경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교회는 핍박과 순교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35년 강점기에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의 주체가 되어 나라의 독립에 앞장서기도 했지만 1938년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는 오점도 남겼습니다. 신사참배(神社參拜)는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으로 강요한 것으로 일본의 민간종교인 신도(神道, Shintoism)의 사원에 일본 왕실의 조상신이나 국가 공로자를 모셔놓은 사당을 지어 기독교인을 참배시키므로 우리나라의 국민정신을 일본화하려는 잔인한 정책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1938년 9월 9일부터 15일까지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소집되었습니다. 총회장 홍택기 목사는 신사참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결합니다. “아등(我等)은 신사(神社)는 종교가 아니오, 기독교의 교리에 위반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한다. 그러므로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 려행(勵行)하고 나아가 국민정신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 하에 있어서 총후(銃後) 황국 신민으로서 적성(赤誠)을 다하기로 기한다.” 총회 총대들은 오전에 가결하고 총회장과 노회장들이 함께 평양에 있는 신사를 합동으로 참배했습니다. 참으로 수치스러운 역사입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가 신사참배를 한 것은 아닙니다. 주기철 목사님 같이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신앙을 지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학교들이 신사참배 반대 입장을 내었고 그 결과 학교가 폐교되고 선교사들이 추방을 당했습니다. 전국 노회들이 신사참배를 가결했지만 <경남노회>만은 유일하게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반대했습니다. 당시 노회장 <최상림 목사님>은 1938년부터 일제의 신사참배 바람이 거세어지자 ‘죽으면 죽으리라.’는 비장한 각오로 신사참배를 반대했습니다. 목사님은 49회의 반복되는 수감생활과 고문을 견디지 못하시고 1945년 5월 순교하셨습니다. 77주년 광복 기념주일에 우리는 신앙의 선조들의 나라를 사랑의 믿음을 기억하고 우리도 나라 사랑과 올바른 믿음을 지키기로 다짐해봅니다.
374자기희생(自己犧牲)의 실천 2022-08-07
주보 칼럼에서 소개했던 가시고기, 염낭거미가 있습니다. <가시고기>는 몸의 길이가 5-6cm밖에 되지 않는 작은 민물고기입니다. 가시고기는 산란기가 되면 암컷은 수컷이 만든 둥지에 산란만 하고 떠납니다. 암컷이 떠난 알 주변에서 수컷은 알이 부화 될 때까지 둥지를 지킵니다. 다른 물고기들이 알을 잡아먹지 못하게 작은 몸짓을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결국 수컷 가시고기는 알을 지키다가 기력이 다하여 새끼들이 부화 될 때 즈음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것이 가시고기의 새끼를 지키려는 본능적 행동입니다. <염낭거미>는 우리나라 논이나 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그마한 노란색 거미입니다. 여러 염낭거미 중 애어리염낭거미는 억새풀을 말아서 그 속에서 사는데 다른 거미보다 모성애가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애어리염낭거미는 산란기가 되면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 없게 스스로 거미집을 만들고 그 안에 산란합니다. 어미는 스스로 갇힌 거미집 안에서 새끼들의 먹이가 됩니다. 염낭거미는 어린 새끼를 키우기 위해 스스로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어린 거미를 키우기 위해 스스로 먹이가 되는 어미 염낭거미의 희생은 미물의 곤충이지만 위대한 희생입니다.
오늘은 어미의 희생에 대하여 한 가지 더 소개합니다. <펠리칸> 새입니다. 펠리칸은 부리 밑에 큰 주머니가 있는 새입니다. 펠리칸은 먹이를 사냥하여 부리 밑 주머니에 넣었다가 새끼에게 날아와 잡은 먹이를 토해내 새끼에게 줍니다. 펠리칸의 전설은 중세 교회 때부터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하는 새입니다. 이유는 새끼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앞 가슴살을 쪼아서 먹이고 자기 목에 상처를 내서 자신의 피를 먹여 어린 새끼를 살린다는 새입니다. 이만큼 새끼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새이기에 킹제임스 영어 성경 표지 중앙 하단에 펠리칸 새를 그려 넣고 있습니다. 가시고기, 염낭거미, 펠리칸 이 모두는 새끼를 위하여 어미가 희생하는 곤충이며, 물고기 그리고 새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희생으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린 보혈의 공로로 사망에서 영생으로 옮겨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인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대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 살아있는 동안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이웃을 위한 작은 희생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373휴가(休暇) 2022-07-31
울산지역 어느 향토사학자의 <육십인생길>이라는 한 시가 경남일보가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내용은 60년 인생길을 앞만 보고 걸어왔더니 발바닥에 통증이 일어났는데, 이는 인생길을 쉬어가라는 뜻임을 알고 걸어오던 길 멈추고 자신을 돌아본다는 내용입니다.
耳順生涯唯進向(이순생애유진향)
육십년을 오로지 / 앞만 보고서 뛰었는데
一瞬足掌來疼痛(일순족장래동통)
한순간 발바닥에 / 아픔이 아려 오네
幾微發病知休息(기미발병지휴식)
병이 날 기미는 / 몸이 쉬어라 하는 일
行路止揚省寸衷(행로지양성촌충)
가던 길 그쳐 살피며 / 뒤돌아서 본다네
인생을 <길>로 비유하며 어느날 문득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면서 걸어온 길을 살펴본다는 의미입니다. 7-8월 여름 휴가철입니다. 휴가(休暇)는 일을 쉰다는 휴(休)와 틈의 낸다는 가(暇)의 한자어입니다. 휴가는 잠시 틈을 내어 쉰다는 뜻입니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리프레쉬(refresh- 활기있게하다, 새롭게하다, 신선하게하다)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휴가를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일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자신의 인생길을 뒤돌아보며 새롭게 점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성경은 인생의 삶을 짧은 인생길이라고 비유로 표현합니다. 나그네 (벧전2:11), 안개와 같은 인생(약4:14), 풀과 꽃과 같은 인생 (시103:15), 바람(욥7:7), 낙엽(욥13:25), 그림자(욥14:2)로 비유합니다. 시편 90편에서 모세는 우리의 인생의 시간들이 신속히 지나가며 순식간에 끝난다고 고백합니다. 2022년 여름 휴가철에 짧은 인생길 그리고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앞에 가던 길을 멈추고,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새롭게 앞으로 나갈 길을 계획하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지혜로운 자기 점검과 미래를 위한 자기 결단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16:3)
3723대 악처(惡妻) 욥의 아내 2022-07-24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유머 이야기 중에 눈에 멍이 들어 병원에 치료받으러 온 남편들에게 간호사가 묻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간호사가 '와이프'에게 왜 맞았는지 물었더니 50대 아저씨, 통장 보여 달랬더니 '와이프'가 그건 봐서 뭐 할거냐며 퍽!, 60대 아저씨는 아침에 '밥 줘'! 했더니 '와이프'가 손은 뒀다 뭐 하느냐며 한방 퍽!, 70대 아저씨는 어디 가냐구 물었더니 '와이프'가 그건 알아서 뭐 하냐며 한방 퍽!, 80대 아저씨는 내가 제일 억울해~, 아침에 눈 떴다고 '와이프'가 한 방 퍽!, 그냥 웃자고 만들어 낸 유머이지만 현대 사회는 여성의 발언권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전에는 남편 중심의 가정이었지만 이제는 아내의 주도권이 그만큼 커진 사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새벽에 욥기를 묵상합니다. 욥은 우스 땅에 사는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한 신앙이었습니다. 자녀 10남매를 두었고 동방에서 제일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재산은 약탈당하고 자녀들은 죽었고 몸은 병들었습니다. 이때 그의 아내가 욥에게 하는 말이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욥기에서 욥의 아내는 그리 크게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욥의 아내를 일반적으로 세계 3대 악처(惡妻)로 평가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 그리고 욥의 아내가 3대 악처입니다. 톨스토이의 아내와 소크라테스의 아내의 이야기는 우리가 악처로 판단될 만한 일화가 남아 있지만 욥의 아내는 욥기에 딱 한 마디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말입니다. 그런데 세계 3대 악처 중에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남편이 고난당했을 때 가족은 유일하게 아내뿐인데 위로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비난한 것이 악처의 조건이 된 것입니다. 가족은 기쁠 때도 가족이며 어려울 때도 가족입니다. 세상 일에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아내들이여 용기를 줍시다. 남편들이여 고난의 현실이지만 새 힘을 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