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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7"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 " | 2026-10-25 |
| 할렐루야! 주님의 보혈로 세워진 참된교회에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첫인사를 드립니다. 사도행전 13장의 바울처럼, 오직 교회의 주인 되신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만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참된교회가 함께 품기 원하는 세 가지 마음을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 하나님이 다윗을 기뻐하신 이유는 완전함이 아닌 '중심과 겸손'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의식하며, 자격 없는 우리에게 부어진 사랑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 교회는 특정 사람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곳입니다. 우리의 경험보다 말씀을 앞세우며, 목회자인 저부터 성도 여러분의 삶을 겸손히 섬기는 종으로 서겠습니다. 셋째, 항상 은혜 안에 머무는 교회 바울은 성도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행 13:43)"고 권면했습니다. 지친 심령이 찾아와 위로를 얻고, 서로의 부족함을 기도로 채워주며 은혜 안에서 함께 세워져 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 그분의 뜻을 이루며 은혜 안에 거하는 참된교회를 함께 만들어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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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6"세상을 이기는 사랑" | 2026-10-18 |
| 1936년 독일 함부르크 항구에서는 해군 훈련함 진수식이 개최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독일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히틀러가 이 행사에서 축사했고 이에 열광한 사람들은 전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한 채 오른팔을 앞으로 펴는 이른바 '나치 경례'로 반응했습니다. 의도적으로 손을 들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아우구스트 란트메서라는 독일인으로, 아리아인이자 나치 당원이었습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가 결국 실종되었습니다. 그는 한때 히틀러 지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랑하게 된 여인은 히틀러가 세상에서 지워 버리고 싶어 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생명과 자신의 가정을 파괴하려는 히틀러를 더 이상 지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저항에 뭔가 거대한 대의명분이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끊임없이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려 합니다. 세상과 우리를 똑같이 만들려 하고, 세상의 신인 맘몬에게 절하게 합니다. 세상은 강력합니다. 그리고 다수입니다. 그 속에서 어떻게 다르게 살 수 있습니까? 수많은 악기가 울리는 순간, 주변의 모든 이가 엎드릴 때, 우리는 무엇으로 그 압력을 견디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고백할 수 있습니까? 사랑입니다.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우리 주님,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삼위 하나님을, 내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품고 세상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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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5"모든 것보다 더 큰 은혜" | 2026-10-11 |
| 카일 아이들먼(Kyle Idleman) 목사님은 자신의 책 「은혜가 더 크다」(규장)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그 압도적인 양적 충만함으로 상쇄시킬 수 있는 인간의 부족과 결핍을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눕니다. 그 세 가지 범주는 나의 실수와 나의 상처와 나의 상황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과거의 실수보다, 내가 지니고 있는 크고 작은 상처들보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들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범주인 '실수'에는 다시 죄악과 수치와 후회가 포함됩니다. 두 번째 범주인 '상처'에는 다시 비통과 보복과 분노가 들어 있고, 세 번째 범주인 '상황'에는 다시 실망과 연약과 절망이 포함됩니다. 아이들먼 목사님은 이처럼 은혜의 초충만성을 통하여, 인간의 어떠한 결핍의 상황도 능히 극복해 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사실 이 은혜의 부등식(은혜>OO)의 우변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 대입해 넣을 수 있습니다. 은혜는 우리의 가난, 과거, 증오, 실패, 질병, 실연, 무능, 악함, 음란, 우울, 비참, 사망보다 더 큽니다. 은혜가 오기 전에는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온 인류에게 왕 노릇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후 그 은혜의 선물을 넘치게 받은 우리에게는 사망조차도 그 힘을 잃고, 은혜가 왕 노릇하게 되었습니다(롬 5:17~21). 이 우주에서 무한하고 광대한 하나님의 은혜보다 더 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10월 생명의 삶, 은혜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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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4"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진리" | 2026-10-04 |
| 성경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증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성경은 일반적인 신앙 체험 모음집이 아니라, 매우 특수한 부르심과 상황, 방법을 통해 기록된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오늘날 누군가가 성경을 넘어서는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 그것은 명확하게 '이단'이 됩니다. 많은 이단들을 보십시오. 새로운 계시를 주장하며 성경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뺍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명백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두가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신앙 체험은 주관적인 것으로 명백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기만의 독특한 체험을 하나님 말씀에 가까운 것으로 여기도록 종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죄받아 마땅합니다. 이단으로 판명된 한 교회 목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천사 봤어요? 못 봤으면 말하지 마." 부당한 영적 권위를 세우기 위해 자기만의 특별한 신앙 체험을 내세우는 자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경험을 말씀보다 앞세웁니다. 왜 그 말에 주눅이 듭니까? 우리는 천사의 말보다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누구든지 성경을 보고 바르게 깨우쳐 아는 바를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합니다 (딤후 3:16~17). 우리의 신앙 체험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신앙 체험은 명확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우리의 삶에 잘 적용하는 데 도움이 될 때 비로소 유익합니다. (9월 생명의 삶, 나의 선택과 하나님의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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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3"하나되는 예배" | 2026-09-27 |
|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함께 한 공동체를 이루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교회 말고 이렇게 각계각층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한 장소에 모여 있다고 해서 제대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15장은 이 문제에 아주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교회 안에는 늘 강자와 약자가 있습니다. 이들이 진정으로 하나 되는 길은 강자가 약자의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서로가 진정으로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경배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이 로마서의 최종 결론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누구보다 강한 분이지만 약한 우리가 짊어질 수 없는 죄의 짐을 십자가에서 대신 지심으로 우리를 받으시고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참조, 롬 15:3, 7, 16). 예수님의 이 사역은 모든 성도들이 따라야 할 모범이고 예배에서 가장 분명하게 실천해야 할 바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15:3)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롬 15:7) (9월 생명의 삶, 예배를 알면 교회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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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2"함께 걷는 생명의 길" | 2026-09-20 |
|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 영감님은 혼자 사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세상은 계산으로 움직였고, 관계는 불필요한 감정의 낭비였다. 그는 "혼자가 편하다"며 사람들을 밀어냈다. 그러나 그 고독은 자유가 아니라 영혼의 감옥이었다. 사랑도, 웃음도, 기쁨도 사라진 자리에서 남은 것은 차가운 동전 소리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밤, 세 영혼이 그를 찾아왔다. 과거의 유령은 그가 잃어버린 따뜻함을 보여 주었고, 현재의 유령은 자신이 외면한 이웃의 웃음소리를 들려주었으며, 미래의 유령은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은 쓸쓸한 무덤을 보여 주었다. 그는 통곡하며 외쳤다. "제발, 다시 살게 해 주시오. 이번엔 다르게 살겠습니다." 그의 회심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함께'의 의미를 다시 발견한 영혼의 각성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생전 처음 이웃의 문을 두드리고, 가난한 자의 집을 찾아가 음식을 나누며 웃었다. 어제까지 그를 냉소하던 사람들조차 놀랐다. 스크루지는 깨달았다. '사람은 혼자 살도록 지음 받지 않았다.' 그의 눈빛에는 오래된 겨울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성경도 같은 진리를 말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양은 혼자 길을 가지 않는다. 늘 앞서가는 목자를 따라가고, 옆의 양들과 어깨를 맞대며 걸어간다. 광야를 지나는 무리 가운데 함께 있음이 곧 생명이다. (9월 생명의 삶, 떠남의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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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1"삶을 비추는 등대" | 2026-09-13 |
| 성경이 없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알 길도, 만날 길도 없으며, 그분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고, 그 성경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우리에게서 성경이 멀어지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고 인생의 길을 잃게 됩니다. 방황은 바로 거기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다시 성경을 펴고 읽기 시작하면 예수께 돌아가게 되고, 방황을 멈추며, 성경 안에 감추어진 수많은 보물을 발견하도록 인도받게 됩니다. J. C. 라일(John Charles Ryle)은 「믿음으로 살라」(복있는사람 역간)에서 성경 읽기를 강조하며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조금 응용해서 소개합니다. “성경에 어려운 내용이 많다는 이유로 성경 읽기를 멈춘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성경에 어려운 것만 있습니까? 쉽고 분명한 것은 없습니까? 바다 위에 있을 때 어두운 밤에 모든 것을 다 보지 못해도, 항구 높은 곳에서 빛을 비추는 등대는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성경 속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도록 비추는 수많은 등대와 같은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성경을 다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읽는 일을 미루지 마십시오. 지금부터 성경을 펴서 읽기 시작하면, 당신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쉽고 분명한 말씀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어둠 속의 등대처럼 삶을 환히 비추는 말씀 또한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날마다 성경을 가까이 할 때, 우리는 빛 되신 그리스도를 더욱 발견하게 됩니다. (9월 생명의 삶, 영혼을 빛나게 하는 여덟단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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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0"믿음의 결단" | 2026-09-06 |
|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님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 일생에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이 있다. 30세 때, 로스앤젤레스 전도 대회를 앞두고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별히 나와 절친했던 찰스 템플턴(Charles Templeton)이 기독교를 떠나면서 '빌리, 자네는 50년이나 시대에 뒤져 있어. 이제는 아무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아. 자네 신앙은 너무 순박해'라고 한 말을 듣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정말 성경은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이 말씀에 내 인생을 완전히 걸어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해답을 찾기 위해서 성경을 뒤졌다. 기도하고 묵상하고 몸부림치면서 샌버나디노 산길을 걷다가 나는 마침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 아버지, 믿음으로 이 책을 아버지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철학적, 심리학적 지식보다 믿음을 더 앞자리에 두겠습니다. 성경이 아버지의 말씀임을 믿겠습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일어났을 때, 지난 몇 달간 느끼지 못했던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감싸는 것을 느꼈다. 내 영혼에서 벌어졌던 영적 전투에서 내가 싸워 이겼음을 머리와 가슴으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의심을 이기고 믿음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단했다. 내 일생에서 가장 잘했던 결정은 내 인생 전체를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순간이 바로 내가 빌리 그레이엄이 된 순간이었다." 그는 이후 세계적인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9월 생명의 삶, 예수를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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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9"구별된 성도" | 2026-08-30 |
| 그리스도인이란 '성도'입니다. '성도'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구별하여'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여 불러낸 존재가 '성도'입니다.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불러내셨을까요?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쓰시고 그 영광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 이 부분에서 가톨릭교가 범한 오류가 있습니다. 가톨릭교에서는 자신들이 정해 놓은 성인의 기준을 가지고 한 사람이 살았던 삶을 평가하여 성인의 반열에 올리고 추앙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도의 신분을 그렇게 계급화한 대목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배격합니다. 빌립보서 1장 1절에서 바울은 "모든 성도”라고 말합니다. 모든 성도는 주 안에서 형제자매로서 평등합니다. ?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 안에서도 계급화 분위기가 적지 않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직분에 대해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분은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각자의 달란트에 맞게 교회 공동체를 섬기라고 주신 직책입니다. ? 예를 들면, 장로, 권사 투표를 해서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크면 사람들의 섬김을 일일이 다 못 알아주기도 하고 못 보고 지나치는 경우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이 "적어도 권사는 돼야 되는데...", "여태껏 집사밖에 못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고가 자신도 모르게 세속화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스며들어 와 있는 세상적 계급 질서 의식을 분별하여 과감히 벗어 던져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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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8"인정함이러라" | 2026-08-23 |
| 예루살렘 공회 이후, 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며 하나 됨의 열매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다시 길을 떠났고, 그 과정에서 마가 요한을 둘러싼 의견 차이로 심히 다투며 각자의 길로 가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안타까운 분열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일조차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바나바를 통해 마가는 회복되었고, 바울은 디모데라는 평생의 동역자를 만나게 됩니다. 결국 교회는 더 굳건해지고, 그 수는 날마다 늘어갔습니다. 이어지는 2차 전도 여행에서 바울은 ‘세 번의 사인’을 받게 됩니다. 모두 자신의 뜻과는 다른 ‘가지 말라’는 사인이었습니다. 아시아로 가지 말라는 성령의 사인을 받았고,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지만, 예수의 영이 막으셨습니다. 결국 계획과는 다르게 마게도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 앞에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순종합니다. 이와 같이 순종은 단지 ‘가라’는 명령에 따르는 것만이 아닙니다. ‘멈추라’ 하실 때 멈출 수 있는 것도 순종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인도함을 인정하게 되었을 때, ‘루디아’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 예비된 영혼을 통해, 빌립보와 유럽 교회의 시작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일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머물면 길을 잃기 쉽지만, 본질을 붙들면 하나님의 뜻을 보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단순합니다. 그분을 ‘인정하는 것’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순종하게 되었을 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오늘도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의 길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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