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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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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칸 영화제 출입증 2021-01-10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에서 매년 5월에 열리는 칸국제영화제(Festival de Cannes)는 세계3대 영화제 중 하나입니다. 세계 최초의 영화제인 베니스 영화제에 자극을 받은 프랑스 사람들이 1939년에 시작하려고 했으나 2차 세계 대전으로 무산되고 1946년에 시작된 영화제입니다. 우리나라는 2002년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했고, 2004년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고, 2007년 배우 전도연씨가 영화<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로 각본상을 받았고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최고의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영화제로 유명한 프랑스의 칸은 인구 7만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도시입니다. 그러나 영화제가 시작되면 전 세계에서 50만 명이 모여듭니다. 1000억 원의 경제 효과를 본다고 합니다. 칸 영화제 운영위원회에서는 영화제 기간에 철저하게 초청된 사람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일반인 관객들은 어느 곳도 자유롭게 들어 갈수 없는 영화제입니다. 관객으로 축제기간에 지역을 관광은 할 수 있지만 돈이 아무리 많아도 영화를 관람할 수 없는 영화제입니다. 영화를 보려면 먼저 어떤 부분이든지 초청받은 명찰이 있어야 하고 영화 관람표가 있어야 합니다. 기자와 평론가, 영화업계 종사자들이 영화제 운영본부에서 발급하는 명찰을 받아야만 출입할 수 있습니다. 발급하는 명찰은 5단계의 색으로 차등을 둡니다. 어느 곳에는 출입 명찰이 있어도 등급이 낮으면 들어 갈수 없습니다. 기자 역시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취재할 수 없습니다. 영화제가 시작되면 출입명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됩니다.
출입명찰이 있어야 영화제에 참석하고 상영되는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제도처럼 우리도 천국에 들어갈 때 명찰이 필요할 것입니다. 천국의 출입증은 예수의 보혈을 믿는 믿음의 출입증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인(印) 맞은 사람으로 십사만 사천 명, 12지파의 각 지파별로 일만 이천 명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물론 상징적 숫자입니다. 우리는 칸 영화제 출입증처럼 천국의 출입이 허용되는 예수님 십자가의 보혈의 믿음으로 들어가는 천국의 출입증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 모두 당당하게 이 땅에서 살다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때 예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믿음의 출입증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92오늘 하루만이라도 2021-01-03
2021년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매일 아침 태양은 정한 시간에 동쪽 하늘에 뜨는데 오늘 아침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날입니다. 2021년 새해 출발의 첫날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월1일에 새로운 의미를 두고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합니다. 크고 작은 희망을 가지고 출발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작심삼일(作心三日)하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핑계로 다짐했던 일들이 무디어진 칼날처럼 마음에서 흐려지고 하루 이틀 지나면서 이내 작정한 마음은 사라지고 후회하는 일상이 되고 맙니다. 그렇지만 오늘 만큼은 마음에 결심한대로 희망을 가지고 살렵니다. 하다가 핑계대고 중단하더라도, 가다가 바쁘다고 내일로 미루더라도 그래도 오늘 만큼은 마음에 다짐한대로 살아보렵니다. 2021년 1월1일 새해 아침이니깐, 1월1일 단 하루만이라도 실천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박목월 선생의 <아침에 눈을 뜨면>이라는 시처럼, “아침마다 눈을 뜨면 환한 얼굴로 착한 일을 해야지 마음 속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 하나님은 날마다 금빛 수실로 찬란한 새벽을 수 놓으시고 어둠에서 밝아오는 빛의 대문을 열어젖혀 우리의 하루를 마련해 주시는데 /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불쌍한 사람을 돕고 괴로운 이가 있으면 괴로움을 함께 나누고 앓는 이가 있으면 찾아가 간호해 주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비록 내일은 내 마음의 결심이 무너진다하더라도 오늘 하루는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김종삼 시인은 <어부>라는 시에서 바닷가 매어둔 작은 고깃배가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을 때 풍랑으로 뒤집힐 때도 있지만 화사한 날씨가 되면 바다에 나아가 고기를 잡겠다고 생각합니다. 매일의 이러한 삶이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생각하면서 어부는 오늘도 바다에 나가 고기 잡기를 희망합니다. 새해아침 희망의 다짐들이 몇 날이 지나면 작심삼일이 되어 후회만 남을지라도 나는 오늘하루 만큼은 희망을 꿈꾸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2021년 1월1일이니깐.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언27:1)
291거센 파도처럼 살고 싶다 2020-12-27
오늘은 2020년 마지막 주일 12월27일입니다. 한 해 동안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는 답답한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덧 2020년 시간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2년 전 소개했던 용해원 목사님의 <거센 파도로 살고 싶다>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거센 파도로 살고 싶다
내 가슴에 뜨거운 피가 흐른다
살아 있는 사자의 심장을
창으로 찔러 솟구치는 피의 몸부림처럼
젊은 영혼에 갈등이 휘몰아쳐 온다

둘러보아라 둘러보아라
세상이 무엇을 주던가
언제나 그대로가 아닌가
우리가 아우성쳐도, 우리가 발버둥 쳐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모두가 잊고 만다

내 가슴에 뜨겁게 흐르는 피의 열정으로 오늘을 살겠다
한바탕 춤사위로 솟구쳤다
몰아쳐오는 바람처럼, 거센 폭풍우처럼
한동안만이라도 뜨거운 열정으로 살고 싶다

2020년 1년 동안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다 우리는 몸과 마음이 지쳐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하루를 살다보면 저녁에는 머리가 핑 돌고 숨쉬기가 곤란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내일이 오면 다시 마스크를 쓰고 일터로 나갑니다. 비록 코로나19와 싸우는 고단한 전투병의 삶을 살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바다의 거센 파도처럼, 내 가슴에 뜨겁게 흐르는 피의 열정으로 오늘을 살겠다”는 시인의 표현처럼 다가오는 2021년의 삶이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는 전쟁터이지만 그래도 파도처럼 열정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반드시 승리할 것을 기대하면서 거센 파도처럼 열정의 삶을 살 것을 다짐해 봅니다.
290인생의 목표 2020-12-20
사람들에게 인생의 목표가 있느냐고 물어보면 분명히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한 번 더 무엇이냐고 구체적으로 물으면 잘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즉시 내 목표는 이것입니다 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저 막연히 가지고 있는 것일 뿐이고, 혹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말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현 불가능한 목표는 어린 아이가 너 커서 어떤 사람이 될래? 라고 물으면 ‘대통령’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이렇게 이루겠다는 목표보다는 막연한 목표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처럼 막연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1953년 예일대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인생의 목표에 대하여 설문조사하여 타임캡슐에 넣고 30년이 지난 후 개봉해보았더니 87%가 구체적인 목표가 없는 막연한 목표였다는 것입니다. 예일대학교 학생들이라면 그래도 세계적인 엘리트 집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구체적 목표 없이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구체적 목표를 세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폴레옹 힐의 성공원리>에 보면 인생의 목표를 세우라고 말하면서 5가지 원리를 말합니다. (1)적극적이고 건설적인 목표를 세우라 (2)구체적으로 세우라(반드시 이미지로 그려라) (3)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변화를 상상해보라 (4)남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라 (5)나와 주변의 사람에게 유익한 목표를 세우라. 이상의 5가지 원리를 생각하고 구체적 목표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망망대해에서 항해하는 모든 배는 먼저 항해하는 목적지를 정해놓고 항구를 출발합니다. 만약 목적지가 없다면 그 배는 표류하는 배입니다. 돌아갈 항구가 있는 배는 폭풍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항해합니다. 인생은 바다에서 항해하는 배처럼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새들백교회 이야기>로 한국교회에 유명해진 릭 워렌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의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두어야함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라”고 강조합니다. 2020년 12월 셋째 주일입니다. 삶의 목표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목표가 분명한가? 그 목표는 신앙적인가? 또한 실현가능한 목표인가? 만약 목표가 없으면 분명한 목표를 정하시길 바랍니다.
289어려운 상황일지라도 도전합시다! 2020-12-13
<도전>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 보면 1) 싸움을 걺. 2)(승부의 세계에서) 보다 나은 수준에 승부를 걺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도전>이라는 말을 흔히 씁니다. 운동선수가 새로운 기록을 세우기 위하여 기록에 도전한다고 하고,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산 정상에 도전한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기업성공에 도전한다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도전하는 곳에 항상 승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에 도전을 했다가 실패하기도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돈키호테>의 저자 미구엘 세르반테스의 일생은 참으로 실패자의 삶과 같았습니다. 1547년 스페인의 라만차에서 출생한 그는 24세 때 레파토의 해전에서 장애인이 되고 28세 때는 5년간의 포로생활을 하였으며 네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였습니다. 그가 작가로서 처음 내 놓은 책이 <칼라테아>이었는데 이때 그의 나이 38세였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 후 그는 비참하고 가난하게 살다가 영수증 부정발급협의로 감옥에 투옥됩니다. 이때까지 그는 인생은 실패자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감옥에서 새로운 작품에 도전합니다. 결국 그는 감옥에서 <돈키호테>라는 걸작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때 그의 나이 58세였습니다. 그가 이러한 불후의 명작을 쓰게 된 배경은 바로 그의 고난과 실패의 인생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칠전팔기(七顚八起)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구약성경 잠언 24장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말과 같은 말입니다. 칠전팔기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일어선다는 말입니다. 거듭된 실패에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도전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국회의원선거를 할 때보면 낙선되었어도 다음번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매번 새롭게 도전합니다. 우리는 이들을 보면서 교훈을 얻어야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서 실패자의 삶을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에도 새로운 성공을 위하여 도전하는 성도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새롭게 도전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기업의 성공을 위하여, 교회부흥을 위하여 새롭게 도전 해봅시다.
288장수철 박사의 삶 2020-11-29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 양 /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가로 나를 늘 인도하여 주신다 (후렴)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 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찬송가 570장은 시편 23편을 주제로 음악가 장수철 박사가 작곡한 곡입니다. 장수철 박사는 미국 무디 성서학교 종교음악과, 시카고 아메리칸 음악학교에서 수학했고, 킹즈 대학에서 음악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장수철 박사는 1955년 미국 유학시절 어느 날 그의 아내 최봉춘 집사로부터 슬픈 편지를 받습니다. 편지는 고향에 있던 12살 된 딸 장혜경 양이 폐렴으로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시편 23편이 적혀 있었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도다.” 갑작스러운 12살 딸의 죽음 앞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위로를 받겠다는 아내 최봉춘 집사의 신앙고백이며 고난 앞에 절망할 수 있는 남편 장수철 박사를 위로하기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이처럼 고난 속에 위로하는 시편 23편의 말씀을 붙잡고 1956년 최봉춘 집사의 작사와 장수철 박사의 작곡으로 찬송가 570장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후 장수철 박사는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박사로부터 이화여대의 종교음악과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교수직을 사양하고 전쟁고아 32명으로 구성된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을 맡습니다.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은 6.25 전쟁고아와 미망인을 돕기 위해 한경직 목사와 밥 피어스(Bob Pierce) 선교사가 창립한 국제구호기구인 <월드비전>의 어린이 합창단입니다. 장수철 박사는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을 창단하여 3년 동안 14개국 104개 도시를 돌며 공연했습니다. 미국의 카네기 홀 공연 때는 입장한 3,500명 외에 5,000명이 입장하지 못했고. 필라델피아의 컨벤션 홀에서는 입장한 1만 2,000명 외에 입장하지 못한 5,000 명이 돌아갈 정도였습니다. 장수철 박사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라는 <탄일종>의 어린이 찬송을 만드신 분입니다. 갑작스러운 딸의 죽음 앞에 아내가 보낸 시편 23편이 큰 위로가 되어 570장의 찬송을 만들어 낸 것처럼 우리도 고난 중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 받는 신앙인이 됩시다.
287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라 2020-11-08
미국의 루이지애나에 살고 있는 토미 테니(Tommy Tenny)라는 목사님 쓰신 <하나님의 관점-God's eye view>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다윗의 장막>과 더불어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은혜를 끼친 책입니다. 이 책의 첫 부분에 보면 사람이 꽉 들어찬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아이가 답답해하면서 “아빠 안아줘요 아무 것도 볼 수 없어요”라고 외치는 내용이 나옵니다. 만원인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이에게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른들의 신발뿐이기에 답답해하는 모습을 그린 장면입니다. 이때 아이를 안아서 높이 올려주면 그때서야 옆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되고 아이는 즐거워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지식과 우리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보는 사물의 관점은 마치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른들의 신발만 보듯이 제한적이며 답답한 관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옛말에 우물 안 개구리처럼 행동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물 밖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는 넓은 세상과 아름다움 세상을 모릅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본대로 행동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세상의 사물을 볼 때 우리의 관점으로 고집스럽게 속단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의 관점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은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위에 계시기에 세상을 다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은 제한적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시야를 낮은 시각으로 한정해 두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더 높은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코로나19의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전염병의 위기 속에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세상을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보지 말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위기의 시대를 새롭게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아름답고 새롭고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위기의 시대를 바라보면서 절망하지 말고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286복종하는 행복 2020-11-15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 1945)는 독일 루터교단의 목사로 반 나치운동가로 히틀러 암살에 가담하였다가 체포되어 1945년 4월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신학적 입장에 대하여 모두 다 긍정하지는 않지만 그가 히틀러의 나치운동에 대하여 반대하며 항거하는 저항정신과 고난에 동참하는 실천적 신앙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독일에서 박해가 심할 때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 교수 라인홀드 리버가 교수자리를 마련하고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본회퍼는 독일국민과 함께 고난을 받겠다고 하면서 망명을 거절하고 독일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독일교회의 신앙에 대하여 <값싼 은혜>라는 용어로 비판합니다. 당시 독일교회의 신앙을 헐값의 용서, 헐값의 위로, 헐값의 성만찬이 되었고,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신앙이 되었음을 본회퍼 목사는 지적합니다. 그의 신앙을 요약한다면 “복종”과 “저항”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감옥에 <옥중서신>을 썼고 많은 기도문을 남기었습니다. 여러 기도문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 태연하게, 명랑하게, 확고하게, / 영주가 자기 성에서 나오는 것처럼, / 감방에서 내가 나온다고 사람들은 자주 내게 말하지만, /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 자유롭게, 다정하게, 맑게, / 마치 내가 명령하는 것처럼, / 간수들과 대화한다고 사람들은 자주 내게 말한다. ---/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 내가 누구이건, / 아! 하나님 당신은 나를 아십니다. /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주님 명령에 복종했는가? 나치정권에 저항하다 목숨을 버린 본 회퍼 만큼 불의한 현실에 저항하지는 못할지라도 주님의 말씀에 작은 복종이라도 하겠다는 용기 있는 결단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10:13)
285교회설립 50주년 2020-11-22
오늘은 우리교회 설립 50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우리교회는 1970년 11월1일 이인구 장로님(백승현 권사님) 가정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해 11월 22일 “서대문제일교회”라는 교회명칭으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2가 164-32에 작은 건물을 얻어 공식적으로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1대 김규식 목사(1년), 2대 이인구 목사(6년), 3대 이진우 목사(16년), 4대 장석락 목사(3년), 5대 조성윤 목사(4년), 6대 장석락 목사(19년)가 목회자로 헌신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서대문지역에서 1996년 6월까지 복음사역을 잘 감당하다가 지역이 재개발되어 26년간 정든 곳을 떠나 일산 중산동 1666-3 현 지역으로 이전해왔습니다. 2007년 지역의 특성을 살려 교회 명칭을 일산서대문제일교회에서 참된교회로 변경하였습니다. 지난 50년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가 수고한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한 바울의 고백처럼 50주년의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50년을 돌아보며 한 가지 깊이 생각해야할 것은 지난 세월이 은혜라면 앞날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폴란드 남부 비엘스코 주(州)에 속해 있는 작은 도시 아우슈비츠가 있습니다. 아우슈비츠가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수용소가 있던 곳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1940년 6월에 나치 친위대(ss) 총사령관 하인리히 힘믈러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그곳에서의 나치들의 만행은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600만 명의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학살시켰습니다. 폴란드는 아우슈비츠의 만행을 씻기 위해 지명을 오수비엥침으로 바꾸었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아우슈비츠라고 부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명을 오수비엥침으로 바뀐다고 해서 과거의 만행이 잊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오늘에 우리의 삶과 미래를 새롭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회 설립50주년을 맞이하여 지나간 과거를 기억하고 오늘의 우리의 사명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내일의 미래를 소망으로 계획해야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까지 은혜로 함께하셨으니 미래도 은혜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284성경대로 사는 삶 2020-11-01
사거리 교통 신호등의 고장으로 차량이 뒤엉킨 경우를 운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은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신호등이 고장 나면 눈치껏 먼저 가려고 합니다. 이런 경우 양보 없이 먼저 가려면 점점 더 차량이 뒤엉키게 됩니다. 차라리 신호등이 없던 곳은 경험에 의하여 서로 양보하며 교통이 원활하게 잘 소통이 됩니다. 오래 전 필리핀에 가보니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 차들이 자유롭게 교행을 하는 것을 보고 신기했습니다. 신호등이 없는데 자기가 지나가야할 차례를 잘 알고 충돌 없이 복잡한 사거리를 잘 지나갑니다. 필리핀의 선교사에게 물었더니 살다보면 익숙해진다는 것입니다. 신호등이 없던 곳은 없는 대로 서로 양보하며 질서를 잘 지킵니다. 하지만 신호동이 있던 곳에 신호등이 고장이 나면 교통사고가 날 위험이 큽니다. 왜냐하면 교통 신호등은 차량운행 질서를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신호등이 없던 곳은 서로 양보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지만 신호등이 있던 곳은 신호등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신호등이 고장이 나면 그만큼 사고의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신호등은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살아가는 것은 사거리 교통신호등을 보고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삶을 살던 사람이 신앙이 나태해지고 믿음이 식어져 성경을 묵상하지 않으면 신호등이 고장이 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고장 난 신호등을 빨리 수리하지 않으면 사거리 교통이 뒤엉키듯이 성경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 뒤엉켜져 혼탁해질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을 생활화합시다. 성경을 읽고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대로 삽시다. 성경대로 삶을 사는 사람은 차가 교통 신호등을 보고 사거리를 지나가면 완전하듯이 완전한 삶이 보장되며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