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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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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독소(獨笑) - 혼자 웃는다 2020-08-09
다산(茶山) 정약용( 1762-1836) 선생은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공부를 잘했습니다. 7세에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움이 달라서라네”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라는 시를 쓸 정도였습니다. 23살 이벽 선생을 만나 서양학문을 소개받고 실학의 실사구시(實事求是-사실을 바탕으로 진리를 추구한다) 관심을 두기 시작합니다. 31살에 수원성을 축조하는 업적을 남기며 정조대왕의 총애를 받아 경기도 암행어사를 거쳐 형조참의(검찰총장)가 됩니다. 그러나 정조 대왕이 죽자 그는 반대파에 의하여 유배를 갑니다. 40살에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간 다산은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생활 하면서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을 쓰기 시작하여 유배지에서 돌아온 그는 74세에 죽기까지 500여권 책을 집필하는 방대한 작업을 했습니다.
그가 유배지에서 쓴 독소( 獨笑 -혼자 웃는다)라는 시조가 있습니다.
有粟無人食 (유속무인식) 양식 많은 집은 자식이 귀하고
多男必患飢 (다남필환기) 아들 많은 집엔 굶주림이 있으며,
達官必?愚 (달관필준우)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才者無所施 (재자무소시) 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고.
家室少完福 (가실소완복) 완전한 복을 갖춘 집 드물고,
至道常陵遲(지도상릉지) 도는 늘상 쇠퇴하기 마련이며,
翁嗇子每蕩 (옹색자매탕) 아비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婦慧郞必癡(부혜랑필치)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이고.
月滿頻値雲 (월만빈치운) 보름달 뜨면 구름 자주 끼고
花開風誤之 (화개풍오지)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대지.
物物盡如此 (물물진여차) 세상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獨笑無人知 (독소무인지) 나 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걸.
인간은 행복의 조건을 다 가질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고 유배지에서 세상을 초월한 모습으로 혼자 웃는 다산의 마음을 엿 볼 수 있는 시입니다. 우리도 가끔은 세속의 행복 조건을 초월하여 혼자 웃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져봅시다. “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272희망으로 삽시다 2020-08-02
에밀리 디킨슨 (Emily E. Dickinson 1830-1886)은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 애머스트(Amherst)에서 1830년에 태어나 활동한 천재 여류시인입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미국의 최고 명문대학인 애머스트 대학(Amherst College)을 설립했고 아버지는 변호사이며 국회위원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녀는 청교도 신앙의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활동적이지는 않았습니다. 평상시 외부출입을 즐기지 않았고 집에서 홀로 시 쓰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그녀가 살아있을 때는 작품이 출판되지 않았으나 죽은 후 동생이 작품을 발견하고 1890년 그녀의 시집을 출판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 < 희망은 날개 달린 것 >를 소개합니다.

희망은 한 마리 새 / 영혼 위에 걸터앉아
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며 / 그칠 줄을 모른다.
모진 바람 속에서 더욱 달콤한 소리
아무리 심한 폭풍도 / 많은 이의 가슴 따뜻이 보듬는
그 작은 새의 노래 멈추지 못하리.
나는 그 소리를 아주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들었다.
허나 아무리 절박한 때에도 내게 / 빵 한 조각 청하지 않았다.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우리 마음으로 날아와 가사 없는 노래를 부릅니다. 그 희망은 아주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노래합니다. 2019년 마지막 주간에 쓴 글입니다. 2020년을 희망으로 시작하자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코로나19로 우리 모두를 답답하게 합니다. 특히 금년은 교회 설립50주년으로 지난 50년을 돌아보며 희망의 새로운 결단을 하려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말씀처럼 모든 일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희망을 버릴 수 없습니다. 50주년 행사는 금년에 못하면 내년에, 내년에 못하면 후년에 하면 됩니다. 코로나19의 답답한 시간, 역대 가장 긴 장마철, 부동산 문제로 불안한 경제, 정치의 실망, 그래도 우리는 희망 노래를 들으며 낙심하지 말아야합니다. 현실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희망으로 삽시다.
271아버지 마음 2020-07-26
바쁜 사람들도 /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중략)

<가을의 기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 마음>이라는 시입니다.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김창국 목사님입니다. 시인은 1913년 평양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목회지에 따라 제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전남 광주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김현승 시인은 일제 강점기 때 항일의 표시로 글을 쓰지 않은 시인으로 유명합니다. 해방 후 조선대학교, 숭실대학교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오늘 소개한 <아버지의 마음>은 목회를 하시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시입니다. 그가 느낀 아버지는 밖에서 어떤 일을 하시든 집에 오면 자상한 아버지로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의 앞날을 걱정합니다. ‘집에 오면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작은 그네에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는 표현은 아버지에 대한 감동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식들에게 자상한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는 홀로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김현승 시인의 표현이 아닐지라도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가장(家長)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기에 외롭고 고독합니다. 영어로 가장은 bread-winner로 표현됩니다. 이 말은 한 집안의 생계비를 버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코로나19로 어렵고 답답한 이때 가장(家長)인 아버지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아버지들이여 힘내세요. 코로나19의 어둡고 답답한 시간...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270외롭고 우울할 때 2020-07-19
하버드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던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은 1950년에 <고독한 군중>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미국 시민의식을 전통지향형, 내부지향형, 외부지향형으로 분류합니다. 그 가운데 외부지향적 인간은 친구와 직장동료들과 기타 주변의 사람들과 친밀하게 사귀면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리스먼은 아무리 많은 사람과 사귀며 사는 외부지향적 인간일지라도 인간은 홀로 외로워하며 고독해 하는데 이러한 상황을 <대중 속에 고독>이라고 표현합니다. 라르쉬 공동체의 헨리 나우웬 역시 <영적 발돋움>이라는 책에서 인간은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인데 외로움을 서로 격려해주고 함께 나누어 주려고 해도 극단의 외로움 속에서 탈출할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우리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어도 가슴을 후비는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가 없으므로 더욱 외로워합니다. 친구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한바탕 왁자지껄 놀더라도 돌아갈 때는 외롭게 혼자 걸어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외로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처럼 본질적으로 고독을 느끼는 존재인 인간에게 코로나19 사태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리운 사람과 만남이 제한되고, 대화가 단절된 포스트 코로나19의 현실은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합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러한 외로움과 우울 감정은 우리의 건강을 해친다고 하면서 스트레스, 우울증, 기억력저하, 치매증상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외롭고 우울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까? 외로움을 극복하는 길은 외로움을 긍정하는 일입니다. 인간은 삶을 살면서 어쩔 수 없이 혼자라는 것을 느끼며 고독해 하는 존재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혼자이며 죽을 때도 혼자입니다. 다만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사귀며 사는 존재일 뿐입니다. 죽을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을 주변 사람과 관계에서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과 만남은 다만 외로움을 조금 나눌 뿐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냥 외로움을 수용하십시오. 고요한 고독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고요한 고독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외로운 순간, 조용히 그 외로움을 받아들이며 고요한 시간으로 바뀌어 본다면 그 순간 우리 앞에 영혼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외로울 때 하나님을 찾고 그분과 대화하십시오. 그리고 외로움을 긍정하십시오. 큰 은혜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269한국을 사랑한 마포삼열 선교사 2020-07-12
평양 지역에서 활동한 마포삼열(馬布三悅, Samuel Austin Moffet, 1864-1939)선교사는 인디애나주(州) 매디슨 출생하여 하노빌 대학, 매코믹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 소속으로 26살의 나이로 1890년 1월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선교를 하시다 1893년부터 선교지를 평양으로 옮겼습니다. 선교사님은 1893년 평양 장대현교회의 개척을 시작으로 수많은 교회를 개척했고, 1901년 <평양신학교>을 세워 초대 교장에 취임했고, 1918년부터 1928년까지 숭실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했습니다. 마포삼열 선교사님은 한국을 사랑한 위대한 선교사입니다. 1912년 <105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애국지사들이 감옥에 투옥되자, 일본의 만행에 대하여 조선총독부의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방문하여 항의했으며 반인륜적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했다고 미국 선교부에 알렸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한국장로교 총회장으로 있으면서 3.1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습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 1919년 3월 17일 기사에 보면 마포삼열 선교사님에 대하여 “그들(선교사)은 복음전도를 위하여 한국에 와있는 듯이 가장하고 있으나 정치적인 혼란을 은밀히 충동하고 있다. 무리의 괴수는 마포(마포삼열)라는 미국 선교사이다.”라고 기사를 실었습니다. 또한 1920년 4월 동아일보에 실은 마포삼열 선교사님의 글을 보면 조선에서의 복음은 독립 정신과 민중의 복리와 정의를 튼튼히 한다고 했습니다. 그 후 선교사님은 신사참배 반대 운동으로 일본 헌병의 감시를 받아오다가 암살의 위협을 느껴 1936년 급히 한국을 뜨셨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1939년 미국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죽어서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셨기에 유족과 협력하여 2006년 한국에 모셔 장로교신학대학 교정에 묻혔습니다. 196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공로훈장과 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130년 전 한국에 오신 마포삼열 선교사는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입니다. 마포삼열 선교사와 같은 수많은 선교사님들의 순교와 헌신이 오늘의 한국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선교사님들의 희생과 순교 그리고 복음의 열정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선교사님들로부터 받은 것이 있으니 우리도 세계선교에 열심을 내야 할 것입니다.
268「억지춘향」과 「억지춘양」 2020-07-05
<억지춘향>이라는 표현은 ‘억지로 어떤 일을 이루게 하거나 어떤 일이 억지로 겨우 이루어지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이 말의 어원은 “춘향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퇴기(退妓-은퇴한 기생)의 딸 춘향과 은밀히 백년가약을 맺고 사랑을 하는 중에 아버지가 영전되어 한양으로 갑자기 올라가기에 춘향이와 이별을 하게 됩니다. 그 후 후임 사또가 부임하여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 강요하자 이부종사(二夫從事)할 수 없다하여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고 정절(貞節)을 지킵니다. 결과는 춘향이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 사또의 생일에 이몽룡이 암행어사로 나타나 춘향을 구해주는 소설형식의 이야기입니다. 신임 사또가 춘향에게 억지로 수청을 들라고 강요하였다는 내용에서 유래한 말이 <억지춘향>입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 <억지춘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 역시 ‘억지로 어떤 일을 이루게 하거나 어떤 일이 억지로 겨우 이루어지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1944년 일제가 영동선(영주-강릉) 철도를 놓을 때 지형적으로 춘양은 그냥 지나쳐야 하지만 억지로 우회하여 춘양역을 계획합니다. 이유는 춘양지역의 소나무 목재와 지하 광산물을 수송하려는 목적으로 억지로 철길을 돌려 춘양역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억지춘양>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억지춘향>이나 <억지춘양>은 어떤 일을 순리대로 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억지로 일을 이룰 때 쓰는 말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행동을 억지로 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라고 합니다. 특히 직분을 맡아 봉사하는 일과 헌금을 할 때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헌금에 대하여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라고 말합니다. 또한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회막을 만들면서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출35:21)”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이처럼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릴 때 그 행동에 힘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감사를 표현할 때 <억지춘향>이나 <억지춘양>으로 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인 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267일천일 영적부흥운동 1년을 보내고 2020-06-28
2019년 7월 1일부터 일천일 영적부흥운동을 시작한지 1년이 지났습니다. 일천일 영적부흥운동을 시작하면서 영적 기대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년을 보내면서 시작할 때의 열정이 식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의 사태로 외부적 환경이 부흥운동의 실천을 어렵게 합니다. 본래 일천일 영적부흥운동은 크고 거창한 운동이 아니라 아주 작은 신앙의 실천을 생활화하는 실천 운동입니다. 첫째는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Q.T의 시간을 가지며 그리고 새벽기도에 참석하여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묵상한 말씀대로 매일 작은 것이라도 믿음을 실천하는 실천운동입니다. 또한 교회공동체의 공동의 문제를 함께 모여 주일 오후, 수요집회, 금요기도회에 함께 기도하는 기도운동입니다. 부흥운동의 부흥(復興)이란 말의 한자어 ‘다시 부’(復), ‘회복할 복’(復)으로 사용하는 말로 우리의 신앙을 다시 회복하며 흥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2000년 교회 역사 속에 수많은 부흥운동이 있었습니다. 그 시작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 오순절 성령강림의 부흥운동입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으며 바울의 세계 전도 여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부흥운동의 공통점은 (1)성령의 강한 역사 (2)개인들의 영성회복과 회개운동 (3)공동체의 개혁 (4)복음전파로 믿는 자의 수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일천일 영적부흥운동이 1년이 지났습니다. 코로나19로 모임이 어려워진 때이지만 시작한 영적부흥운동이기에 계속하여 실천하려합니다. 우리의 영적부흥운동은 (1)기도와 말씀묵상(Q.T) (2)작은 것이라도 즉각 순종하는 실천하는 삶(나부터, 하나부터, 이제부터) (3)가정, 직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코로나19로 예배가 어려워진 때이지만 첫째 <새벽기도회>에 열심을 냅시다. 매일 어려우면 월1회, 주1회라도 새벽에 나오셔서 잠깐이라도 기도합시다. 둘째 <개인경건 말씀묵상 Q.T> 성경읽기표에 따라서 1년 1독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셋째 <작은 신앙의 실천> 매일 하나라도 실천하는 삶을 삽시다. 넷째<가정, 교회, 직장에서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천국으로 만들어 갑시다. 일천일 영적부흥운동의 1년을 보내고 이제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부흥운동에 우리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함께 시작합시다.
2666월에 기억해야 할 사람들 2020-06-21
문재인 대통령의 첫 미국방문은 2017년 6월에 있었습니다. 첫 공식 일정으로 6월28일 미국 워싱턴D.C의 해병대국립박물관 앞 공원, 한국전쟁 장진호 전투 기념비 앞에서 헌화 후 이렇게 연설을 했습니다. “67년 전인 1950년, 미 해병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들이 한국전쟁에서 치렀던 가장 영웅적인 전투가 장진호 전투였습니다. 장진호 용사들의 놀라운 투혼 덕분에 10만여 명의 피란민을 구출한 흥남철수 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 그때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오른 피란민 중에 저의 부모님도 계셨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거론한 장진호 전투는 1950.11.26부터 12.13일까지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주변에서 영하 30도가 넘는 추운 겨울 날씨에 해병부대 3만 명이 중공군 12만 명에게 포위되어 수많은 사상자를 낸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당시 미 해병부대 제10사단은 겨우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후퇴했습니다. 그리고 12월 12일부터 미군과 국군병력 10만5000명, 차량 1만7500대, 군수품 35만 톤을 철수하는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동원된 수송선만 193척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님이 탔다는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7600톤급의 화물선으로 1만 4천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마지막 흥남부두를 떠난 배였습니다. 당시 흥남철수 작전의 사령관이었던 알몬드 장군의 통역관 현봉학 선생은 28살의 청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간곡하게 피난민을 배에 실어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현봉학 선생은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하고 미국 버지니아 주립의과대학에 2년 유학을 마치고 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자원하여 전쟁터로 나와 통역관이 되었습니다. 장로교 목사님의 아들로 독실한 신앙을 가진 현봉학 선생은 피난민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한국군 김백일 장군과 현봉학 선생의 간청으로 흥남 철수 때 기적같이 10만의 피난민이 부산과 거제도로 올 수 있었습니다. 6.25 전쟁 중 자유를 위하여 이름 없이 전사한 병사들, 장진호 전투, 흥남철수 작전, 빅토리호, 알몬드 장군, 김백일 장군, 현봉학 선생 등 6.25 전쟁의 슬픈 역사 속에 우리는 기억해야 할 사건과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기도하며 피난민을 배에 승선시키기 위하여 마지막까지 노력한 현봉학 선생은 6월에 우리 모두 한 번은 기억해야 할 사람입니다.
265포기하지 마세요. 힘내세요. 2020-06-14
주보에 칼럼을 쓰면서 한 주간의 생각을 정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간 일정이 바쁘고 마음이 분주할 때에는 억지로 글을 쓸 때도 있습니다. 억지로 글을 마무리 지어 원고를 보내고 나면 일단은 끝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쓴 후 주보에 실린 글을 보면 조잡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 이런 날은 글을 내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글을 실은 주간은 괜찮은 편입니다. 아예 글을 쓰지 못하고 옛날에 실었던 글을 다시 올리는 때도 있습니다. 마음이 몹시 부끄러운 날입니다. 금주에도 마지막까지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코로나19로 어려워진 때에 ‘힘내세요’라는 말입니다. 그동안 칼럼에서 강조했던 희망의 말을 요약해봅니다.
<가을의 기도>로 유명한 김현승 시인의 <희망>이라는 시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면서 “빵 없는 땅에서도 배고프지 않은, 물 없는 바다에서도 목마르지 않은 우리의 희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 고난 중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다는 뜻을 강조하면서 재기에 대하여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재기(再起)라는 말은 한자어입니다. 재(再)는 “거듭, 다시 한 번”라는 뜻이며 기(起)는 “일어서다”는 뜻입니다. 사업에 실패했던 사람이 절망을 딛고 일어서 사업에 다시 성공한 사람을 말할 때 “재기했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수십 차례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 성공한 대통령이 됩니다. / 고난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삶을 말하면서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학문과 재능이 뛰어났지만 정치적 당쟁에 휘말려 18년의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냅니다. 그러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면서 살아 돌아와 수많은 글을 남깁니다. 대표적 저서 <목민심서><흠흠신서><경세유표>입니다. / 베토벤은 청각을 잃은 후 1803년 오라토리오 <감람산상의 그리스도>, 1804년<제3교향곡 영웅>, 1808년 <제5교향곡 운명> <제6교향곡 전원>, 그리고 청각을 완전히 잃은 상태에서 1824년 <제9교향곡 합창>을 작곡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워진 때 <힘내세요>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이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시3:6)
2646월을 맞이하며 2020-06-07
경기도 유형 문화제 1호로 지정된 수어장대(守禦將臺)는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 안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건물로 1624년(인조2)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지은 4개의 장대(동장대, 서장대, 남장대, 북장대)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입니다. 장대(將臺)란 조선시대 장군이 올라가서 군대를 지휘하던 높은 곳을 말합니다. 수어장대가 있는 남한산성은 병자호란(1636) 때 인조가 청나라 마지막까지 싸우다 항복한 비극의 장소입니다. 항복 이후 청나라는 조선인을 60만 명이나 잡아갔습니다. 청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은 사람이 아닌 개, 소, 말 같은 동물로 취급받으며 노예시장에 팔렸습니다. 이들과 함께 끌려간 왕자 봉림대군은 8년 후 돌아와 조선의 17대 임금 효종이 됩니다. 효종은 1649년 왕이 되자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당했던 수모를 생각하며 청나라를 치려는 북벌 정책을 계획하고 군사 강화 정책을 펼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왕이 된지 10년에 40세의 나이로 일찍 죽습니다. 그 후 100년의 세월이 지나고 조선 21대 왕 영조는 남산산성에 있던 서장대(西將臺)를 증축하고 이름을 바꾸어 수어장대(守禦將臺)로 부르고 무망루(無忘樓)라는 현판을 직접 써서 걸었습니다.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겪었던 나라의 수모를 잊지 말자는 뜻입니다. 영조의 무망(無忘)의 정신은 비극의 상황을 잊지 말고 기억하여 다시는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 말자는 것입니다.
어제가 6월 6일 현충일입니다. 현충일(顯忠日)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殉國先烈)과 전몰(戰歿)한 장병들의 충렬을 기리는 날입니다. 6월은 6.25 전쟁이 일어난 달입니다. 6.25 전쟁은 북한이 남쪽을 향하여 총부리를 겨누고 처내려옴으로 시작된 동족상잔의 비극의 역사입니다. 6.25 전쟁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고통을 당했습니까? 교회와 성도들이 순교했고 북에서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의 삶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습니까? 6월을 맞이하며 우리는 전쟁의 비극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북한은 아직도 핵무기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영조대왕의 무망정신(無望精神)을 생각하며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