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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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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전화위복(轉禍爲福) 2020-10-11
미국 메이저리그의 추신수 선수는 부산고등학교 시절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의 주역입니다. 당시 추신수 선수는 투수로 좋은 성적을 내어 대회 MVP 선수가 됩니다. 그 후 2001년 메이저리그 시애틀 구단에 투수로 입단합니다. 투수로 입단했지만 시애틀 구단에서 타자로 포지션을 변경시킵니다. 투수가 타자로 포지션을 변경한다는 것은 너무나 야구선수로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추신수 선수는 메이저리그의 특급선수가 되었습니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된 것입니다. 국민타자로 불리며 활동하던 이승엽 선수 역시 투수였지만 부상 때문에 타자로 전향하여 성공한 선수입니다. 운동선수 중에 부상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유대인 중에 유명한 아키바라는 랍비가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책을 읽던 중 갑자기 바람이 불어 등잔불이 꺼졌습니다. 책을 읽다 불이 커지니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리고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사랑하던 개가 간밤에 늑대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아키바는 책을 읽다 불이 커지고, 사랑하던 개의 죽음에 대하여 불평하며 아침산책을 했습니다. 산책 중 마을 사람들에게 간밤에 마을에 도적떼가 쳐들어와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게 됩니다. 아키바는 간밤의 등잔불이 꺼진 것과 개가 늑대에 죽은 것을 불평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만약 불빛이 밖으로 나갔다면, 만약 개가 짖어댔다면 자신도 도적 떼에게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불평이 감사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다보면 뜻하지 않는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고난이 큰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승엽선수의 팔꿈치 부상이 오늘날 홈런타자로 만든 것처럼, 랍비 아키바의 개가 죽은 것이 복이 된 것처럼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은 훗날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뜻 않게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큰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에게 고난이지만 고난이 전화위복이 되어 큰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감사해야합니다. (시119:71)“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280네비게이션(navigation) 2020-10-04
네비게이션은 최근 자동차 운전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목적지를 찾아가려면 지도를 보고 가다가 차에서 내려서 주변사람들에게 길을 묻곤 했습니다. 그러다 혹시라도 좌회전해야할 곳에서 우회전을 하면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가면 거의 정확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에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목적지를 찾아가는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본래 네비게이션(navigation)이라는 말은 라틴어 나비게레(navigere)에서 온 말입니다. 이 말은 나비스(navis) “배”라는 단어와 아게레(agere) “움직이다, 인도하다, 끌다”라는 단어가 합쳐진 것입니다. 즉 배가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방법을 말하는 “항법” 이라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바다에서 배가 항해할 때 길을 인도하는 장치를 네비게이션이라고 했는데 요즈음은 육상에서 움직이는 자동차의 길안내 장치를 네비게이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길을 잘 안내해주던 네비게이션이 가끔은 엉뚱한 길로 안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낯선 지방의 초행길에 네비게션이 길 안내를 잘못하면 난감한 일이 일어납니다. 초창기 네비게이션은 오류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해주는 대로 갔더니 막다른 골목으로 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위성항법장치(GPS-Global Positioning System)로 정확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 받기 때문에 정보의 오류보다는 기계적 오류로 목적지를 잘못 찾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확하게 목적지를 찾아갑니다.
우리의 인생길을 안내해주는 네비게이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의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데 날마다 옳은 길로 인도하는 정확한 네비게이션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삶은 매일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인생 여정 길의 네비게이션은 성경입니다. GPS의 실시간 정보를 전달 받는 것 같이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언제나 실시간 인생길의 안내를 받게 됩니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정확무오한 우리 인생의 네비게이션입니다. 성경을 읽고 생활화해서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천국까지 행복한 여행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119:105)
279당당한 그리스도인 2020-09-27
어느 곳에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되던 식당이 어느 날 갑자기 손님들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옆 건물에 새로운 식당이 개업을 했는데 깨끗하고 맛있고 값이 저렴했습니다. 손님들은 당연히 새 식당을 찾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식당 주인은 자기 식당에 손님들이 줄어든 것은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해서 경제가 어려워졌고 그러므로 우리 식당에 손님이 줄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손님이 줄어든 것은 분명 옆 건물의 새로운 식당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당 주인은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해서 손님이 줄었다고 핑계를 대고 소문을 낸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통령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식당 주인에게 머리를 숙이며 하는 말이 ‘죄송합니다. 정치를 잘못해서 식당에 손님이 줄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깊이 사과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 집을 나와 깨끗하고 맛있는 옆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가수 김건모가 부른 <핑계>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를 보면 “내게 그런 핑계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네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혼자 남는 법을 내게 가르쳐준다며 . ---- 아무런 준비도 없는 내게 슬픈 사랑을 가르쳐준다며 넌 핑계를 대고 있어. -------” 사랑이 식어서 떠난다, 나는 너에게 실망하여 너를 떠난다고 떳떳하게 말하고 떠나면 좋겠는데 구차하게 슬픈 사랑을 가르쳐준다며, 혼자 있는 것을 가르쳐 준다며 핑계를 대면서 떠나는 사람에게 <핑계 대지마>라고 외치는 노랫말입니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자신이 잘못해서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고 핑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존감(self-esteem)이 약할 때 불평하고 원망하고 핑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모든 일에 당당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사과하며 긍정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에 대하여 불평, 불만하지 않고 원망과 핑계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코람데오(Coram Deo)의 삶을 삽니다. 코람데오는 라틴어 코람(coram-앞에서)과 데우스(Deus-하나님)가 합쳐진 말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살 때 쓰는 말입니다. 손님이 떨어진 식당 주인처럼 핑계하지 말고 언제나 감사하며 당당하게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278새로운 각오 2020-09-20
지난 9월14일 조선일보 김윤덕 문화부장이 <누가 한국교회에 돌을 던지나>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3·1 만세운동 다음 날인 1919년 3월 2일은 일요일이었다. 그러나 주일 예배를 제대로 드린 교회는 없었다. 거사를 위한 비밀 집회가 주로 교회에서 이뤄져, 수많은 목사와 신자들이 감옥에 끌려가고 예배당은 폐쇄됐다. 제암리교회 학살 등 일제의 보복이 시작되자 신자들은 집이나 은신처, 차디찬 감옥에 엎드려 예배를 드렸다.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그곳이 교회였다. 이어지는 글은 “한국 개신교 100년의 역사는 자랑할 만한 것이었다. 3·1 만세 시위를 주도했고, 민족 계몽 운동, 민주화 운동, 여성 운동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대화의 수레바퀴였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일부 교회들의 안일한 대응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독교가 비난받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고 예배모임을 하는 반지성적 행위가 한국교회를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맹신주의, 기복신앙, 목회자세습, 편나누기, 교회 오래 다닌 연륜을 강조하는 권위주의, 성경을 떠난 반지성주의는 코로나바이러스보다 우리를 더 위협합니다.
이러한 위기의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까? 첫째는 하나님의 시대적 메시지를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본질이며 생명인 예배가 위협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그동안 우리는 형식적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에 정직하지 못했습니다. 기원전 8세기 활동한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은 너희의 무수한 재물에 싫증이 났고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너희는 나에게 보이려고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1:13)라고 당시 형식적 예배자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 앞에서 진솔하게 예배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으로 경배하지 못했고, 하나님이 나의 왕으로 명령하시는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바른 예배에 충실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신앙의 덕을 위하여 바른 행동을 해야 합니다. 정직하게 공평하게 그리고 강도 만난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한 선한 사마리아 사람(눅10:25)처럼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작은 것부터, 이제부터, 나부터 실천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실천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277예배의 회복 2020-09-13
한국교회는 오늘날 전 세계 교회 중에 한 주일에 예배를 가장 많이 드리는 교회입니다. 주일오전예배, 주일오후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목장예배 등 예배의 홍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배의 횟수는 많지만 예배의 소중함과 능력을 상실한 형식적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17세기 청교도 목회자로 알려진 리차드 스틸(R. Steele 1629-1692) 목사가 쓴 <예배를 깨트리는 유혹-흐트러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스틸 목사님은 이 책에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는 예배에 집중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릴 때 마음에 평화를 얻고 또한 세상을 이기는 영적 능력을 공급받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이유는 사탄의 유혹으로 마음이 산만하고 흐트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스틸 목사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실패하는 이유를 12가지로 표현합니다. 그중의 첫째 강조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적인 마음의 자세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의 자세가 있기에 예배시간에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흐트러지게 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시간의 우선순위에서 예배시간보다 세속의 일을 먼저 계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의 흐트러짐을 치료할까? 첫째는 원인을 제거하라! 예배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전의 실패를 슬퍼하라! 셋째는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라! 넷째는 하나님의 임재를 믿으라!고 말합니다.
요즈음 우리는 코로나19로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방송으로 예배합니다. 이러한 예배의 위기를 맞이하여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려면 우리는 마음의 결단과 강한 의지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정직한 예배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은혜를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우리 모두 정직한 예배, 바른 예배, 온전한 예배, 영적인 예배가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4:24)
276고난의 때 자신을 돌아보라 2020-09-06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늘 형통의 날만 있는 것이 아니고 곤고한 날도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형통의 삶을 원하지만 시대가 전쟁, 자연재해, 정치적으로 고통의 시대라면 고난을 겪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의 민족적 고통, 6.25 전쟁의 시간들, I.M.F 시대의 경제적 위기, 코로나19의 전염병의 시대가 되면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시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고통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고난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공여부가 결정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이 찾아오면 고난의 순간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슬기롭게 대처하므로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고난의 순간을 이기지 못하고 방황하여 인생을 방탕하게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은 고난을 통하여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은혜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강영우 박사(1944-2012)는 앞을 볼 수 없는 시력을 잃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연세대학교 교육학, 피츠버그 대학교 특수 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일리노이대학교 교수, 백악관 자문위원과 정책차관보 등 멋진 삶을 살다간 그리스도인입니다. 강영우 박사는 14살 중학교 시절 축구를 하다가 축구공에 눈을 맞아 시력을 잃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절망을 했지만 시력을 잃은 것이 인생을 포기하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끝까지 노력하여 연세대학에 입학하고 미국 유학을 가게 됩니다. 결국 성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고난이 그를 더 강하게 만든 것입니다. 코로나19의 전염병으로 우리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고난이 우리에게 있을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러한 고난의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합니다. 그리고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깨달아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275나그네, 순례자의 길 2020-08-23
몇 년전 칼럼에 썼던 코메니우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글을 올립니다. 잔 아모스 코메니우스( Jan Amos Komensky 1592년-1670년)는 17세기 체코 출신의 교육학자로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2살 때 부모를 잃고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1616년 그의 나이 24세에 헤르본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안수를 받고 고향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러나 1618년 30년 전쟁으로 고향을 등지고 망명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오랜 망명 생활을 한 후 1628년 모라비안 형제들과 함께 폴란드에 정착하여 목사로, 교사로서, 그리고 저술가로서 활발한 생활을 합니다. 그 후 영국, 스웨덴, 화란 등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교육학자로 많은 업적을 남깁니다. 저서 중 <대교수학>, <열려진 언어의 문>, <빛의 길>, <세계도회> 등이 유명합니다. 코메니우스는 30년 전쟁으로 망명 생활을 하던 중 1622년 비극의 상황이 그의 가정에 이르게 됩니다.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두 아들을 잃게 됩니다. 이때 받은 충격으로 그는 은둔처에서 <세상의 미로와 마음의 천국 1623>, <슬픔에 슬픔을, 위로에 위로를 1624>, <안전의 중심 1625>를 집필하게 됩니다. 이 세 권의 책은 코메니우스의 영성을 말해주는 3대 위로의 책으로 꼽힙니다.
그 가운데 <세상의 미로와 마음의 천국>은 제목이 말하듯이 온갖 혼돈과 거짓과 불의와 무질서로 가득 찬 미로와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통하여 천국의 위로를 받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1부는 <세상의 미로>로 시작하여 제1장에서 “세상으로 순례 여행을 떠나는 이유”부터 제35장으로 되어 있고, 제2부는 <마음의 천국>으로 시작하여 제53장 하나님의 가족으로 영접된 순례자, 제54장 결론으로 마칩니다.
이 책의 전체 내용은 코메니우스 자신을 순례자로 표현하면서 미로와 같은 세상에서 크게 절망할 때 우리의 마음에 찾아오셔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천국의 안식을 누림을 강조합니다. 요즈음 우리는 코로나19로 앞이 보이지 않는 미로와 같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난의 때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를 받아 마음에 천국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힘내세요. 코로나19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274젊은이여 도전하라! 2020-08-16
스타벅스(Starbucks Corporation)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커피 전문점입니다. 처음 시작은 1971년 영어 교사였던 제리 볼드윈이 교직을 사임하고 고든 보커, 지브 시글와 함께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커피 원두를 판매하는 작은 소매점으로 출발했습니다. 스타벅스의 이름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일등항해사 이름입니다. 아주 작은 커피 전문점을 1987년 하워드 슐츠가 인수하면서 세계적인 커피 전문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스타벅스 로고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이렌(Siren)이라는 바다의 인어입니다. 17세기 판화를 참고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여러 차례 발전되어 지금의 녹색 로그가 탄생되었습니다. 로그의 여인은 아름답고 달콤한 노랫소리로 지나가는 배의 선원들을 유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든 기업들이 그러하듯 스타벅스도 초창기 어려움이 있었으나 지금은 80개국 3만개 매장으로 1년에 30조라는 천문학적인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1991년 이대 1호점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전국에 매장이 1천3백 개 매장과 년 매출액이 2조원에 가깝고 하루 30만 명이 찾아오는 커피전문점이 되었습니다. 기업정신은 커피만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공간을 제공하고 소비자들과 공감하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며 찾아오는 고객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스타벅스는 고객보다 근무하는 직원의 행복을 우선하는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주문한 음료가 나올 때 진동 벨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커피를 주문하면 직원들이 소리를 칩니다. ‘A –11번 손님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2잔 나왔습니다’ 이렇게 소리를 칩니다. 직원을 최우선하며 인간존중의 경영을 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직원들에게 하루 종일 소리치게 하는 것은 조금은 아쉬운 점입니다. 오늘 칼럼에 스타벅스 이야기하는 것은 ‘작은 시작이 큰 역사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고 싶어서 입니다. 참된교회 청년이여 도전하세요. 환경이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뜻을 세우고 큰 비전으로 출발하십시오. 주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무엇이든 출발하십시오. 도전하는 그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
273독소(獨笑) - 혼자 웃는다 2020-08-09
다산(茶山) 정약용( 1762-1836) 선생은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공부를 잘했습니다. 7세에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움이 달라서라네”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라는 시를 쓸 정도였습니다. 23살 이벽 선생을 만나 서양학문을 소개받고 실학의 실사구시(實事求是-사실을 바탕으로 진리를 추구한다) 관심을 두기 시작합니다. 31살에 수원성을 축조하는 업적을 남기며 정조대왕의 총애를 받아 경기도 암행어사를 거쳐 형조참의(검찰총장)가 됩니다. 그러나 정조 대왕이 죽자 그는 반대파에 의하여 유배를 갑니다. 40살에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간 다산은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생활 하면서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을 쓰기 시작하여 유배지에서 돌아온 그는 74세에 죽기까지 500여권 책을 집필하는 방대한 작업을 했습니다.
그가 유배지에서 쓴 독소( 獨笑 -혼자 웃는다)라는 시조가 있습니다.
有粟無人食 (유속무인식) 양식 많은 집은 자식이 귀하고
多男必患飢 (다남필환기) 아들 많은 집엔 굶주림이 있으며,
達官必?愚 (달관필준우)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才者無所施 (재자무소시) 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고.
家室少完福 (가실소완복) 완전한 복을 갖춘 집 드물고,
至道常陵遲(지도상릉지) 도는 늘상 쇠퇴하기 마련이며,
翁嗇子每蕩 (옹색자매탕) 아비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婦慧郞必癡(부혜랑필치)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이고.
月滿頻値雲 (월만빈치운) 보름달 뜨면 구름 자주 끼고
花開風誤之 (화개풍오지)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대지.
物物盡如此 (물물진여차) 세상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獨笑無人知 (독소무인지) 나 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걸.
인간은 행복의 조건을 다 가질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고 유배지에서 세상을 초월한 모습으로 혼자 웃는 다산의 마음을 엿 볼 수 있는 시입니다. 우리도 가끔은 세속의 행복 조건을 초월하여 혼자 웃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져봅시다. “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272희망으로 삽시다 2020-08-02
에밀리 디킨슨 (Emily E. Dickinson 1830-1886)은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 애머스트(Amherst)에서 1830년에 태어나 활동한 천재 여류시인입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미국의 최고 명문대학인 애머스트 대학(Amherst College)을 설립했고 아버지는 변호사이며 국회위원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녀는 청교도 신앙의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활동적이지는 않았습니다. 평상시 외부출입을 즐기지 않았고 집에서 홀로 시 쓰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그녀가 살아있을 때는 작품이 출판되지 않았으나 죽은 후 동생이 작품을 발견하고 1890년 그녀의 시집을 출판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 < 희망은 날개 달린 것 >를 소개합니다.

희망은 한 마리 새 / 영혼 위에 걸터앉아
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며 / 그칠 줄을 모른다.
모진 바람 속에서 더욱 달콤한 소리
아무리 심한 폭풍도 / 많은 이의 가슴 따뜻이 보듬는
그 작은 새의 노래 멈추지 못하리.
나는 그 소리를 아주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들었다.
허나 아무리 절박한 때에도 내게 / 빵 한 조각 청하지 않았다.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우리 마음으로 날아와 가사 없는 노래를 부릅니다. 그 희망은 아주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노래합니다. 2019년 마지막 주간에 쓴 글입니다. 2020년을 희망으로 시작하자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코로나19로 우리 모두를 답답하게 합니다. 특히 금년은 교회 설립50주년으로 지난 50년을 돌아보며 희망의 새로운 결단을 하려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말씀처럼 모든 일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희망을 버릴 수 없습니다. 50주년 행사는 금년에 못하면 내년에, 내년에 못하면 후년에 하면 됩니다. 코로나19의 답답한 시간, 역대 가장 긴 장마철, 부동산 문제로 불안한 경제, 정치의 실망, 그래도 우리는 희망 노래를 들으며 낙심하지 말아야합니다. 현실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희망으로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