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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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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역할의 과중과 모호성 2013-06-01

다원화되고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다보면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스트레스(stress)를 받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라는 말은 의학용어로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신체적 긴장 상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긴장 상태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심장병·위궤양·고혈압 등의 신체적 질환을 일으키기도 하고 불면증·노이로제·우울증 등의 심리적 부적응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현대의학자들이 지적하기를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물론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에 대한 도전과 긴장감이 생기어 자신의 삶을 유익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지나친 스트레스는 심리적 부작용뿐 아니라 신체적으로 질병을 가져옵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면 좋으련만 하지만 살다보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특히 조직사회로 구성된 직장생활은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직장상사와의 관계, 동료와의 관계, 부하직원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통하여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또한 근본적 문제로 직장에서 자신의 역할 때문에 갈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직장에 출근하여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자신의 역할이 모호하면 많은 갈등 속에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즉 역할의 모호성(Role ambiguity)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입니다. 연극을 하는 배우가 무대의 막이 올라갔는데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대사도 모른다면 얼마나 당혹스럽겠습니까? 이와 같이 직장에 출근을 했는데 자신의 역할이 모호하다면 얼마나 마음에 큰 갈등이 생기겠습니까? 그러므로 항상 자신의 역할에 대하여 점검하면서 분명한 자신의 역할을 알고 있어야합니다.


또한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중 하나는 자신의 역할의 과중성(Role overload)때문입니다. 사람은 항상 자신이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많고 재능이 많아도 개인이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입니다. 그런데 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일을 맡게 되면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직장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역할의 모호성과 역할의 과중은 항상 갈등을 초래하며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할 일과 하지 못할 일을 구분하여 소신 있게 행동합니다.

12덤으로 사는 인생 2013-05-25

우리에게 잘 알려진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년)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백치> <백야> <죽음의 집의 기록>등 너무나 많은 작품을 쓴 작가입니다.

 

그는 러시아 귀족가문 출신으로 어린 시절 기숙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작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주변 환경이 여의치 않아 군인학교에 들어가 1841년 공병학교를 졸업하고 러시아 육군 소위로 임관을 합니다. 그러나 작가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1844년에 제대하고 1846년에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를 발표합니다.

그 후 그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급진적 젊은 지식인들의 정치적 모임에 가담합니다.

당시 젊은이들이 따르는 급진적 사조는 공상적 사회주의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정치적 모임을 주도하다가 1849년에 체포되어 사형언도를 받게 됩니다. 그의 나이 28살이었습니다.

당시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1세는 서유럽의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의 사상이 퍼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젊은 지식인들을 체포하여 사형을 선언하고 마지막 사형집행 직전에 사면해주는 정치적 연극을 꾸미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대 위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두려움이 어떤 것인가를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 총살직전에 사면이 된 그는 훗날 사형대 위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심정을 <백치>라는 작품에서 “사형수들에게 5분을 준다면 2분은 동지들과 이별하는데, 2분은 삶을 되돌아보는데, 나머지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는데 쓰고 싶다”고 표현합니다.

사형집행 직전 사면이 된 그는 그 후 시베리아로 유배를 갔다가 4년 만에 돌아와 작품을 쓰기 시작합니다. 사형집행 직전 사형대에서 살아난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평생 그의 마음 한편을 지배했습니다. 죽음의 사형대에서 살아난 도스토예프스키의 그 후 그의 삶은 적극적이 되었고 작품 활동에 몰입하여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와 같은 명작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형대에서 살아난 것처럼 죄와 허물로 죽었던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삶은 은혜에 감동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3)

11힐 링(healing) 2013-03-10

우리사회에 웰빙(wellbeing)이라는 말이 한참 유행하더니 이제는 힐링(healing)이라는 말이 유행을 하고 있습니다. T.V프로그램중에도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웰빙은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하여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자는 의미의 유행어라면, 힐링은 병든 것을 치료하고 회복하는 의미의 치유라는 말입니다.

힐링은 병든 몸을 의사들이 진단하여 약물이나 수술로 치료하는 외부적 행위의 치료가 아닌 사람의 내면의 마음의 치유를 말합니다.


한때 미국의 아마존 닷컴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했던 힐링소사어티(Healing Society)의 저자 이승헌씨는 힐링을 마음의 깨달음으로 표현하면서, 도가(道家)의 무위자연설(無爲自然說)의 노,장자(老,莊子) 사상에 근원을 두고 단학과 뇌운동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힐링은 최근 요가, 마음수련, 명상등으로 우리들의 삶의 현장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또한 힐링여행,  힐링콘서트, 힐링트래킹, 힐링숲길, 힐링캠프등 다양한 용어의 키워드가 되고 있습니다.  


왜 이런 힐링이라는 말이 우리사회에 친근한 말로 다가오고 있을까요?

우리사회는 젊은이들의 취업문제, 노인들의 돌봄의 문제, 기업의 비정규직 노동문제, 대학입시중심의 교육문제등 너무나 우리들을 우울하게하며 마음의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불안은 우리를 우울하게 하며 결국은 세상을 등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하며 대중문화처럼 되어버린 사회는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병든 사회라는 것입니다. 병든 사회이기에 힐링이라는 말이 정겹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복음으로 영혼을 치유하여 평안을 회복시켜주어야 하는데 교회마저 외형적 부흥에 치중하다보니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더 병들게 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교회가 우리사회에 평안을 주지 못하므로 사회가 병들어 힐링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영혼에 관심을 두어 사람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는 진정한 복음 안에서의 영혼 힐링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10천국항해(天國航海) 2013-01-13

1961년 미국의 J.F케네디 대통령은 베트남의 공산화는 동아시아의 공산화를 초래한다하여 미군을 베트남에 파견합니다. 그 후 1965년에 미군이 전투에 직접 참여하면서 베트남전쟁은 본격화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처음엔 의료지원단을 보냈지만 1965년 10월에 청룡부대와 맹호부대를 파병하면서 베트남전에 깊이 참여합니다. 하지만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루한 전쟁으로 어려워진 미국이 결국 휴전을 제의하여 1973년 1월에 파리에서 휴전협정을 하고 미군의 전투주력부대를 철수시킵니다. 그러나 북쪽의 공산군이 미군의 전투주력부대가 철수하자 협정을 위반하고 맹렬한 공격을 재개하여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어 베트남전쟁은 막을 내립니다.


전쟁이 끝나자 승리자가 된 공산군은 사람들을 처형하기 시작합니다. 사이공 함락 36시간 만에 26만명을 처형하는 끔찍한 일을 자행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처형의 현장에서 살기위하여 사람들은 베트남을 탈출하기 시작합니다. 1980년 경향신문은 배로 탈출하는 보트피플(boat people)이 1975년- 1980년까지 100만 명에 이르렀고 바다에서 구조되지 못해 죽은 숫자가 14만 명이 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기위해 베트남에서 탈출하여 배를 타고 바다로 나왔지만 이들을 받아주는 나라가 없어 바다에서 표류하게 됩니다. 당시 이웃 나라들이 이들을 구조해주지 않는 이유는 정치적 외교문제와 이들이 가난하기에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도 부산에 베트남난민수용소가 있었으나 1993년 마지막으로 난민160명을 뉴질랜드로 보내면서 문을 닫았습니다. 보트피플 선상난민(船上難民)은 배를 타고 바다로 탈출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살기위해 탈출은 했으나 갈 곳이 없었습니다.


보트피플을 인생여정으로 비유한다면 나그네 인생길에 최종목적지가 없는 사람들을 보트피플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 항해하는 배가 돌아갈 항구가 있으면 희망찬 항해를 합니다. 그러나 보트피플처럼 돌아갈 곳이 없으면 절망의 표류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돌아갈 고향인 최종 목적지 천국이 있습니다.

2013년 우리의 최종 목적지 천국을 향해 희망찬 항해를 합시다.

9인생의 전환점 2013-03-31

1902년 미국의 필라델피아의 어느 교회에 부크맨  ( Frank N. D. Buchman) 이라는 목사님이 목회를 하고 계셨습니다.

목사님은 어려운 교회를 담임한지 5년 만에 대형교회로 부흥시켰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교회를 부흥시키는 과정에서 너무나 앞만 보고 달렸기에 교회는 부흥되었지만 목사님의 영적 상태는 탈진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목사님은 자신의 영성회복을 위하여 교회를 사임하고 영국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영국을 여행하던 목사님은 어느날 케스웰이라는 작은 마을을 방문합니다. 그런데 이날이 주일이었습니다. 여행 중이기에  목사님은 주일예배를 의무감으로 시골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13명 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골목사님이 어찌나 열정으로 설교를 하시었던지 부크맨 목사님에게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당시 시골목사님의 설교의 내용은 <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죄 용서를 받고, 희망을 가지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부크맨 목사님은 그동안 수없이 많은 설교를 들었지만 이날처럼 구속의 은총과 부활의 진리가 자신에게 감동으로 다가오지를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이날 케스웰의 시골교회에서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한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훗날 목사님은 이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날의 영적 은혜는 부크맨 목사님을 새롭게 했습니다. 이날이후로 목사님은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가 영적 경건운동을 전개합니다. 
목사님이 전개한 영적 경건운동은 1938년 6월4일에 세계적인 영적 운동인 도덕재무장 M. R. A ( Moral Re-Armament 절대정직·절대순결·절대무사·절대사랑 )운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도덕 재무장(M. R. A) 운동은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을 중심으로 크게 전개되었습니다. 


부크맨 목사님은 여행중 영국의 작은 마을 케스웰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고, 영성운도인 도덕재무장(M.R.A)운동을 전개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영적인 새로운 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8잡초(雜草) 2013-03-17

온실에서 자란 화초는 온실의 환경에 익숙해 있기에 온실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여름철 비바람을 막아주고 추운겨울 보온을 해주는 온실의 보호막이 있기에 화초는 살 수 있습니다. 화초는 온실의 보호막이 없어지면 시들해지고 결국 죽게 됩니다.


하지만 잡초(雜草)는 자라가는 환경을 누가 마련해주지 않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하여 스스로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잡초입니다.

사전에서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이라고 설명합니다. 잡초는 누가 가꾸지 않아도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번식해갑니다.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때 잡초는 뽑고 뽑아도 계속해서 자라기에 골치를 아파합니다. 최근에는 잡초를 제거하려고 아예 밭고랑에 비닐을 덮어버립니다. 잡초의 무한한 생명력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용혜원 시인은 <잡초>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 아무도 반기지 않아도 /서성거리기 보다는 /스스로의 길을 가야 하기에 /살아야겠다는 열망으로/ 생명의 줄을 이어갑니다./ 이름 모를 꽃이 피어도 / 누구든 사랑해 주면/ 한동안의 행복도 가져보지만/  떠가는 구름이 / 한줄기 비라도 /쏟아 놓으면/그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 버려진 땅에서도 / 진한 목숨만은 / 어찌할 수 없어 / 언제든 오신다면 /쉬어갈 자리는 /비워 놓겠습니다. >   

잡초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꿋꿋함과,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걷어차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올라오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잡초의 무한한 생명력은 작은 고난에도 쉽게 포기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환경을 탓하는 나약한 인간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80평생 인생 여정 길을 가는 동안 온실처럼 언제나 평안하고 순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길은 비바람이 부는 사나운 날씨와 같은 시련과 역경이 닥칠 때도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생길은 어떠한 환경에도 꿋꿋하게 자라는 잡초처럼 시련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끈질김이 필요합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욥24:16)

7잔인한 4월, 희망의 새싹 2013-04-28

1948년 노벨 문학상을 탄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Eliot)이 쓴 ’황무지’(The Waste Land : 1922년 작품)의 첫머리 제1부 The burial of the dead (죽은 자의 매장)에서 ‘잔인한 4월’(April is the cruelest month)로 표현되면서 4월을 잔인한 달로 말하기 시작 했습니다.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시인 T.S 엘리엇(Eliot)이 4월을 잔인하다고 표현한 것은 역설(逆說)적인 표현입니다.

엘리엇이 황무지를 쓸 당시 1차세계대전후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희망이 없는 황무지와 같은데 눈치 없는 봄의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와 대지에 비를 뿌리어 꽃을 피우고 희망을 속삭이니 잔인한 4월이라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계절은 꽃피고 새 우는 4월인데 사람들의 마음은 희망 없는 황무지이기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은 2013년 4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 4월 마지막 주일은 우리에게는 시인 엘리엇이 표현한 황무지 같은 희망 없는 잔인한 4월이 아니라. 죽은 땅에 라일락을 키워내고, 엄동설한 추운 겨울 꽁꽁 얼었던 대지의 딱딱함을 실낱같은 생명력 하나로 뚫고 나오는 새싹 같은 희망의 4월입니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들은 자신의 살아 있음을 대지에 외치며 어두운 땅 속을 비집고 파릇파릇 움트는 모습은 분명 우리에게 희망의 모습입니다. 생명의 새싹이 움트는 4월 우리에게는 잔인한 4월이 아니라 희망이 움트는 새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욥14:7-9)

 

6세브란스 병원 2013-02-10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은 1884년 의료 선교사 였던  알렌 선교사에 의하여 왕립병원인 광혜원이 설립되면서 시작된 병원입니다. 세브란스 병원은 1886년 광혜원으로 출발하여 제중원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1904년 서울역 앞 남대문 근처에 미국의 사업가 루이스 세브란스가 5만5천불을 기부하여 현대식 건물을 짓고 병원 이름을 세브란스로 변경하면서부터 지금의 세브란스 병원이 된 것입니다.


제중원 병원에  5만5천불을 기증한 세브란스는 1870년에 미국의 록펠러와 함께 석유사업을 하여 사업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록펠러와 친구사이인 세브란스는 어느 날 제중원 의사였던 에비슨 선교사의 선교 보고서를 읽고 선교헌금 보냅니다.  당시 루이스 세브란스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한 번도 방문한 나라도 아니고 관심조차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중원(濟衆院)의 3대 교장인 선교사 애비슨(Oliver R. Avison)이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가서 교단에 선교 보고를 하였습니다. 보고서에서 그는 “동양에 조그만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곳에서는 우리가 조금만 힘써 고치면 나을 병으로 사람이 많이 죽어가고 있다. 우리가 병원을 지어서 협력하여 진료를 하면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보고를 읽은 세브란스는 조선에 헌금하기로 결심합니다. 루이스 H. 세브란스(Louis Henry Severance, 1838-1913)는 1838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시(Cleveland)에서 출생하였으며 독실한 장로교 신자로 직분은 장로였습니다.
몇 년전 세브란스 병원이 병원 설립 120주년을 기하여 얼굴 없는 기부자들을 추적해 본 결과 루이스 세브란스의 아들인 존 세브란스가 12만 달러를 보내왔고 그리고 70년 동안 80만 달러를 보내온 ‘J. L. Severance 펀드(세브란스 기금)’의 이름으로 기부금이 들어온 것입니다. 이 기금은 존 세브란스가 아버지 루이스 세브란스의 뜻을 받들어 유언으로 기금을 마련해 놓고 지금까지 매년 기부금을 보내온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역사입니다. 에비슨 선교사의 선교 보고서를 보고 마음이 감동된 루이스 세브란스의 선교헌금이 오늘날 한국의 제일가는 대학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이 된 것입니다.

결단하는 헌신이 큰 역사를 이룹니다.

2013년 새로운 결단의 헌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5성경 읽는 습관 2013-05-05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미국의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킨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1809-1865)대통령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캔터키 시골 마을에서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정규교육은 18개월 정도 밖에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책 읽기를 좋아하여 어린 시절부터 성경을 늘 읽었고 벤자민 프랭클린의 전기, 워싱턴 대통령의 전기,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등을 읽으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링컨의 일생을 보면 많은 실패를 거듭합니다. 23살에 주의원 선거에 실패한 후 24살 사업에 실패, 29살 주의회 의장 선거 낙선, 31세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 34살에 하원의원 낙선, 37살에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으나 39살에 다시 낙선, 46살에 상원의원 낙선, 47살에 부통령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 49살에 다시 상원의원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한 후 51살에 미국의 16대 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여정은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다시 일어서 새롭게 도전하여 대통령이 되었고 미국의 흑인노예들을 해방시킨 위대한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숱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린 시절부터 생활습관이 된 <성경을 읽기>입니다.


“나는 선거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음식점으로 갔다. 그리고는 배부르게 음식을 먹었다. 그 다음 이발소로 가서 이발을 하고 머리에 기름을 듬뿍 발랐다. 이제 아무도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배가 부르고 또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었다. 그리고 내 목소리와 걸음걸이는 다시 힘찰 것이다. 아브라함 다시 시작하자! 힘을 내자!” 이러한 그의 행동은 늘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사람이기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는 습관을 길러줍시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처럼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용기 있는 자가 되도록 어린 시절부터 성경 읽는 습관을 길러줍시다.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 (잠24:1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22:6)

4새해에는 새롭게 도전합시다 2013-01-06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USC)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귀국하여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김난도 교수가 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새내기 직장인이 되어 아마추어 사회인으로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여려가지 마음의 갈등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 에세이 형태의 글입니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새내기 직장인으로 사회생활을 할  때 모든 것이 자신이 꿈꾸어 왔던 것처럼 이루어지지 않을 때 갈등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잘 보듬어주는 글입니다.

내용 중에 “엄마처럼 살기 싫었는데 자꾸만 엄마를 닮아가” “아빠처럼 되기 싫었는데 그렇게 되기도 쉽지가 않아”라는 것처럼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 직장인이 사회에 적응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김난도 교수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답답하고 불안한 청년들에게 그렇게 천 번을 흔들리며 사는 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젊은이들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매일의 삶이 갈등의 연속이며 고난의 인생길인 것 같습니다. 그럴지라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가다보면 흔들리는 일도 있고 가다보면 후회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가야하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미국의 상담심리학자이며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 박사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책에서 자신이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면 후회의 연속이며 앞을 보면 벼랑 끝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럴지라도 인생은 앞으로 걸어가야 하며 앞으로 걸어가려고 하면 갈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2013년 새해 아침입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많은 사람이 위기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위기는 분명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입니다. 여러분의 상황이 절망의 극한 상황일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용기 있게 도전하는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사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