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 No제목 | 등록일 |
|---|---|
| 93개인의 성공보다 섬김의 그리스도인 | 2016-11-20 |
성공한 인생의 7가지 ㄲ의 단어를 몇 차례 강조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꿈, 끈, 꾀, 꼴, 꾼, 끼, 깡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1) 꿈(희망의 좌표)은 미래를 향한 희망과 성공의 좌표이며 (2) 끈(인간관계의 인맥)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말하며 (3) 꾀(지혜로운 창의력) 번뜩이는 영감의 창의력, (4) 꼴(자기관리의 모습)은 외형적 용모가 아닌 자기관리를 말하며, (5) 꾼(전문성)은 자기 일에 충실하며 전문적 지식을 말하며, (6) 끼(타고난 재능)는 재능으로 자기 일에 대한 열정을 말하며, (7) 깡(도전정신-끈기)은 어려워도 끈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도전정신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성공하려면 꿈(희망좌표) 끈(대인관계) 꾀(창의력) 꼴(자기관리) 꾼(전문성) 끼(재능) 깡(도전정신)의 7가지 ㄲ을 강조합니다. 어느 설문기관에서 CEO(최고경영자) 104명에게 꿈, 끈, 꾀, 꼴, 꾼, 끼, 깡,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설문조사를 하여 발표했습니다. 7가지 성공 요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꿈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꿈 32% , 끈 18% , 꾀 14%, 꼴 13%, 꾼 12%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성공하기 위하여 7가지 요인이 다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꿈”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바다에서 항해하는 배가 얼마나 빨리 달리며, 얼마나 화물을 많이 실을 수 있으며, 얼마나 안전하게 항해 하느냐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할 일은 어느 항구로 항해하느냐가 제일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꿈은 바로 항해하는 배들의 목표지점의 항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사회에 일어난 대통령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절망의 상황을 볼 때 “꿈, 끈, 꾀, 꼴, 꾼, 끼, 깡,”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꼭” 필요한 기본인 정직과 주변의 유혹이 있어도 “꾹” 참고 인내하는 오직 한 길, 즉 바른 길로 가는 인내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처음보다 “끝”이 아름다운 모습이 필요합니다. 화려한 꽃이 떨어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성공지향의 인생보다 자기희생이 있는 섬기며 함께하는 아름다운 동행이 필요한 때입니다. 오늘의 절망의 상황에 “꼭” 필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 |
|
| 92영조의 무망루(無忘樓) | 2016-11-12 |
경기도 유형문화제 1호로 지정된 수어장대(守禦將臺)는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 안에 있는 조선후기 목조건물로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지은 4개의 장대(동장대,서장대,남장대,북장대)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입니다. 수어장대는 1층 누각이었던 서장대(西將臺)를 영조 27년 1751년 2층으로 증측 하고 이름을 수어장대(守禦將臺)로 바꾸어 부른 것입니다. 장대(將臺)란 조선시대 장군이 올라가서 군대를 지휘하던 높은 곳을 말합니다. 남한산성의 수어장대는 우리나라 역사의 비극의 장소입니다. 이 곳은 병자호란(1636) 때 인조가 청나라 태종의 군대와 마지막까지 싸운 곳입니다. 당시 인조는 청나라 13만 대군과 싸우다 45일 만에 잠실의 삼전도에서 항복을 합니다. 청나라는 인조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왕자들을 볼모로 잡아갑니다. 이때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 심양으로 잡혀갔던 왕자 봉림대군은 8년 후 돌아와 조선의 17대 임금 효종이 됩니다. 1649년 왕위에 오른 효종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당했던 수모를 생각하며 청나라를 치려는 북벌 정책을 계획하고 군사강화 정책을 펼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그 후 100년의 세월이 지나고 조선 21대 임금 영조는 남산산성에 있던 서장대(西將臺)를 증축하고 이름을 바꾸어 수어장대(守禦將臺)로 부르고 수어장대 안에 무망루(無忘樓)라는 현판을 직접 써서 걸었습니다.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었던 수모와 그의 아들 효종이 청나라에 대한 복수로 북벌 정책을 계획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죽은 비통함을 잊지 말자하여 영조가 붙인 이름입니다. 영조의 무망(無忘)의 정신은 비극의 상황을 잊지 말고 기억하여 다시는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의 우매한 행동으로 국민들이 실망하고 분노합니다. 더 이상 대통령은 우리의 희망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실 앞에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비극인데,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영조의 무망의 정신을 생각합시다. 오늘의 비극을 절대로 잊지 말고 다시는 이러한 일들을 되풀이 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분노의 현실을 미래의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8:2) |
|
| 91고난 중 위로(시편 23편) | 2016-11-06 |
“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 양 /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가로 나를 늘 인도하여 주신다 (후렴)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 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찬송가 570장은 시편 23편을 주제로 음악가 장수철 박사가 작곡한 곡입니다. 장수철 박사는 미국 무디 성서학교 종교음악과, 시카고 아메리칸 음악학교에서 수학했고 킹즈 대학에서 음악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장수철 박사는 1955년 미국 유학시절 어느 날 그의 아내 최봉춘 집사로부터 슬픈 편지를 받습니다. 편지는 고향에 있던 12살 된 딸 장혜경 양이 폐렴으로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시편 23편이 적혀 있었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도다.” 갑작스러운 12살 딸의 죽음 앞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위로를 받겠다는 아내 최봉춘 집사의 신앙고백이며 고난 앞에 절망할 수 있는 남편 장수철 박사를 위로하기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이처럼 고난 속에 위로하는 시편 23편의 말씀을 붙잡고 1956년 최봉춘 집사의 작사와 장수철 박사의 작곡으로 찬송가 570장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후 장수철 박사는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박사로부터 이화여대의 종교음악과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교수직을 사양하고 전쟁고아 32명으로 구성된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을 맡습니다.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은 6.25 전쟁고아와 미망인을 돕기 위해 한경직 목사와 밥 피어스(Bob Pierce) 선교사가 창립한 국제구호기구인 <월드비전>의 어린이 합창단입니다. 장수철 박사는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을 창단하여 3년 동안 14개국 104개 도시를 돌며 공연했습니다. 미국의 카네기 홀 공연 때는 입장한 3,500명 외에 5,000명이 입장하지 못했고. 필라델피아의 컨벤션 홀에서는 입장한 1만 2,000명 외에 입장하지 못한 5,000 명이 돌아갈 정도였습니다. 장수철 박사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라는 <탄일종>의 어린이 찬송을 만드신 분입니다. 갑작스러운 딸의 죽음 앞에 아내가 보낸 시편 23편이 큰 위로가 되어 570장의 찬송을 만들어 낸 것처럼 우리도 고난 중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 받는 신앙인이 됩시다. |
|
| 90추수감사절 | 2016-10-30 |
구약 성경에 나오는 3대 절기는 유월절(逾越節), 오순절(五旬節), 초막절(草幕節-수장절 收藏節)입니다. 그 가운데 초막절은 출애굽 때 광야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절기입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620년 메이프라워(Mayflower)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다음 해 1621년 농사를 짓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초청하여 함께 감사하며 잔치한 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입니다. 미국은 1863년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국경일로 제정하여 추수감사절을 지켜 오고 있습니다. 영국은 8월 1일 라마스 날(Lammas Day)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독일은 성 미카엘 축일(9월 29일)이 지난 후 주일을 감사절로, 스위스 개혁파 교회는 9월에 추수감사절을 지킵니다. 우리나라의 추수감사절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 全國 敎會에셔 一年에 一次式 感謝하난 日을 作定하난 問題에 對하야 徐景祚 長老가 演說하기를 我國敎會가 比前 旺盛한 것이 天父의 恩惠인즉 一 感謝日을 定하고 一年에 一次式 悅樂하며 感謝하난 거시 甚合하다 하고 其後에 梁甸伯·金興京·邦基昌·韓錫晋 諸氏가 繼續 說明하다." (죠선 예수교장로회 공의회 제4회 회의록) 1904년 9월 13일 서울 동현예배당에서 회집된 제4회 합동 공의회에서 서경조(1907년 목사 안수 받음)장로가 감사주일 제정에 대한 발언의 기록입니다. 서경조 장로의 이러한 발언으로 한국교회는 1904년 11월 11일 첫 감사절을 지켰습니다. 이후 선교사들이 날짜를 1905년 첫째 주 목요일, 1906년 11월 19일(목요일), 1908년에는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정하여 미국의 추수감사절 절기와 맞추어 지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이 지키려했던 감사절의 의미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의 감사절은 1년 농사의 추수를 감사하는 것 뿐 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 된 것에 대한 감사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가 부흥한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감사절 날짜 역시 11월 초에 지켰습니다. 2016년 우리교회의 추수감사절은 11월 6일(첫째주일)입니다. 우리는 1년 동안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이 땅에 복음이 증거 되고 교회가 부흥되는 것에 감사해야합니다. 2016년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범사에 감사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
|
| 89 하루살이, 메뚜기, 개구리 | 2016-10-23 |
모기처럼 생긴 곤충 중에 “하루살이” (Wing lasting for a day)가 있습니다. 하루살이는 입이 퇴화되어 먹는 기능을 못합니다. 그러기에 유충에서 부화하여 하루가 되면 죽게 됩니다. 보통은 24시간 안에 죽지만 1주일 이상 생존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하루를 살고 죽기 때문에 하루살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하루살이를 등장시킨 우화(寓話-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을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숲속에서 만나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놀자고 말합니다. 그러자 하루살이가 메뚜기에게 내일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메뚜기는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고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하루살이는 내일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그날 죽었습니다. 메뚜기는 같이 놀던 하루살이가 없어지자 외로웠습니다. 숲속에서 놀던 메뚜기는 개울가로 갔습니다. 하루살이를 떠나보낸 메뚜기는 개울가에서 개구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개구리와 재미있게 놀다가 시간이 지나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산에는 곱게 물들었던 단풍잎이 떨어지고 낙엽 지는 추운 날씨가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개구리가 메뚜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이제 그만 놀고 “내년”에 만나자 나는 이제 땅속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야 해. 이때 메뚜기가 개구리에게 묻습니다. 내년이 무엇이냐고. 개구리는 메뚜기에게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날이 오는데 그때가 내년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메뚜기는 개구리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살이, 메뚜기, 개구리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것들이 얼마나 작고 작은 것들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매하게 자신이 경험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주변의 문제들을 자신의 경험 틀 속에 집어넣고 고집스럽게 자기주장만을 합니다. 단풍이 물든 이 가을철, “오늘”, “내일”, “내년”의 우화 속에 등장하는 하루살이, 메뚜기, 개구리를 통하여 생각과 생활의 틀을 넓혀 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
|
| 88목숨을 바칠 만한 일 | 2016-10-16 |
“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유관순(1902년 12월 16일- 1920년 9월 28일)의 유언입니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출생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예수님을 믿게 된 그는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공주 영명학교 에 재학중이던 유관순은 1916년 엘리스 샤프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교 보통과에 입학하였고, 1919년 고등과 1학년 재학중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에 내려와 진천, 청주, 천안, 안성, 병천 등지의 유지들과 교인들에게 알려 4월1일 아우네 장날에 만세운동을 주동하였습니다. 고향 아우네 장날 만세운동을 주동한 그는 공주지방법원에서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의 1심 재판에서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자 불복하고 항소하여 6월 30일 서울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유관순은 감옥에 수감된 후에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구타를 당하는 일이 많았고 1920년 9월28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하였습니다. 당시 유관순 열사가 감옥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화학교 의 프라이(Lulu E. Frey)와 월터(Jeanette A. Walter) 선교사는 형무소에 찾아가 시체 인도를 요구하였으나 거부당했습니다. 이에 이화학교 선교사들이 유관순의 옥중사망을 국제여론에 호소하겠다고 강력하게 항의하자, 일본 당국은 시체를 인도해 주었습니다. 1920년 10월 14일 정동감리교회에서 김종우 목사님이 장례식을 집례하여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그 후 1936년 일제의 이태원 택지 조성 때 묘지를 무연고 묘지로 처리하여 지금은 무덤을 찾을 수 없습니다. 18살의 꽃다운 나이로 항일투쟁인 독립만세운동을 외치다 감옥에서 옥사한 유관순 열사는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매우 위대한 일입니다. 나는 지금 내 목숨을 바칠 만한 일에 열중하고 있는지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
|
| 87 포기할 수 없는 인생길 | 2016-10-09 |
미국의 <로렌스>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불운한 사람”이라는 타이틀로 주관지 <글로브>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그는 1985년 건설현장에서 전기 감전 사고로 죽을 뻔하다 살아났습니다. 그 후에도 두 번 더 감전 사고를 겪게 됩니다. 화가 난 로렌스는 건설 회사를 상대로 변호사를 선임하여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합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승리를 확신하게 되는데 갑자기 변호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 결국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여 재판을 진행하는데 별로 실력이 없어 변호사 비용만 들어갔습니다. 세 번째 변호사를 만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하던 중 변호사가 로렌스의 아내와 눈이 맞아 도망을 갑니다. 너무나 괴로워하던 로렌스는 더 큰 불행의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건강검진을 한 의사로부터 암 통보를 받게 됩니다. 병명은 간암 말기라는 것입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신약을 복용하기로 하고 병원에서 약을 받아 집에 와서 약을 복용합니다. 그런데 약을 복용한지 1주일이 지난 후 부작용으로 의식을 잃게 됩니다. 병원에 후송되어 치료를 하던 중 밝혀진 것인데 의식을 잃게 된 것은 약의 부작용인데 그는 암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의사가 간염을 오진한 것이었습니다. 로렌스의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교통사고를 당하고 또 다시 강도를 만나 250달러를 빼앗기는 불행의 사건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행의 연속이 그에게 닥쳤지만 그는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중에 “나는 그래도 행복 합니다. 왜야하면 세상에는 저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보다 행복합니다”라고 자신의 심정을 밝혔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갑작스러운 불행이 우리 앞에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어떻게 마음에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불행을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불행이 닥치면 하나님이 내게 허락한 고난이라고 생각하고 고난 중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고난이 있다고 인생길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
|
| 86올바른 만남 | 2016-10-02 |
20세기의 위대한 종교 철학자 중 한 사람 중에 마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마틴 부버는 유명한 랍비 문헌학자인 솔로몬 부버의 손자로 1878년 비엔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일찌기 비엔나. 라이프치히. 베르린. 취리히 지역의 대학에서 철학과 예술사를 공부했고 공부를 마친 후 그는 독일의 <Die Welt>지의 편집장으로 일했습니다. <Die Welt>의 편집장으로 있으면서 유대인들의 권익을 위하여 많은 글을 실었고 유대주의 운동인 시온이즘(Sionism)운동에도 적극 동참했습니다. 독일에서 유대주의 운동을 하던 그는 결국 쫓겨나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 종교사회학 교수로 가게 됩니다. 히브리 대학에서 종교사회학을 강의하면서 부버는 저 유명한 <Ich und Du 나와 너>를 발표하게 됩니다. 그가 발표한 <나와 너>(Ich und Du)의 관계철학 사상은 근세 종교철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신학자 칼 발트(K.Barth), 폴 틸리히 (P.Tillich), 라인홀드 니버(R.Niebuhr), 에밀 부르너(E.Brunner)등의 신학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마틴 부버의 관계철학<Ich und Du>의 중심사상은 만남과 관계입니다. 부버는 인간의 만남에 있어서 <나>외에 타자(他者)의 만남은 두 가지 만남이 있는데 (1)첫째는 <나와 너 >의 만남이고, (2)다른 하나는 <나와 그것 Es>의 만남입니다. 여기서 <나 와 너 >의 만남은 2인칭의 인격(人格)의 만남이고, <나와 그것 >의 만남은 3인칭의 물격(物格) 즉 사물의 만남으로 봅니다. <나와 너>의 2인칭의 인격적 만남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며 인간의 실존을 깨닫게 합니다. 하지만 3인칭의 <그것 Es>으로 만남은 전혀 다른 의미의 만남입니다. 특히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때 3인칭의 물격(物格)으로 만난다면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이용하는 만남 됩니다. 즉 하나님을 자기 위안(慰安)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또는 사람과의 만남이 물건처럼 3인칭의 만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을 만날 때 그 사람을 물건처럼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이러한 만남은 부버가 말하는 3인칭의 물격(物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 그리고 이웃과의 만남의 바람직 관계는 서로 이용하려는 흑심을 버리고 상호 존중하며 배려하는 만남으로 2인칭의 인격적(人格的) 만남이 되어야합니다. |
|
| 85 < 희 망 > | 2016-09-25 |
<가을의 기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승현 교수는 아버지가 평양에서 목회를 하던 신실한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어린 시절 믿음 안에서 자랐으며 늘 기도해 주시던 아버지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이기에 작품 쓰는 일이 그리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일본에 저항하는 항일의 방법으로 일제 말기에는 붓을 꺾고 글을 쓰지 않는 침묵의 길을 택합니다. 1945년 해방이 된 후 그는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1951년 조선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대학에 재직하면서 많은 시를 남깁니다. 오늘은 김현승 교수의 <희망>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희망>을 황금으로, 별로, 수평선의 기적으로, 사랑으로 표현하며 <희망>으로 인해 시인은 "빵 없는 땅에서도 배고프지 않고, “물 없는 바다에서도 목마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 희망 > 희망/ 어두운 땅 속에 묻히면 황금이 되어 불같은 손을 기다리고, 너의 희망/ 깜깜한 하늘에 갇히면 별이 되어 먼 언덕 위에서 빛난다 너의 희망/ 아득한 바다에 뜨면 수평선의 기적이 되어 먼 나라를 저어 가고, 너의 희망/ 나에게 가까이 오면 나의 사랑으로 맞아 뜨거운 입술이 된다. 빵 없는 땅에서도 배고프지 않은, 물 없는 바다에서도 목마르지 않은 우리의 희망!/ 온 세상에 불이 꺼져 캄캄할 때에도, 내가 찾는 얼굴들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생각하는 갈대 끝으로 희망에서 불을 붙여 온다.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때에도 우리의 무덤마저 빼앗을 때에도 우릴 빼앗을 수 없는 우리의 희망! / 우리에게 한 번 주어 버린 것을 오오, 우리의 신(神)도 뉘우치고 있을 너와 나의 희망! 우리의 희망! |
|
| 84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2016-09-18 |
시편 90편에서 모세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세월이 강건하면 80년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70-80년의 삶을 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일까? 한 번쯤은 생각해볼 명제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에서 이웃을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 것을 말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를 생각하며 남은 인생을 아름답게 설계해 보시기 바랍니다.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 윤 동 주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 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 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대답하기위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 나가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위해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놓아 좋은 말과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 나가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