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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추수감사절 | 2018-11-04 |
| 구약 성경에 나오는 3대 절기는 유월절(逾越節), 오순절(五旬節), 초막절(草幕節-수장절 收藏節)입니다. 그 가운데 초막절은 출애굽 때 광야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절기입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620년 메이프라워(Mayflower)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다음 해 1621년 농사를 짓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초청하여 함께 감사하며 잔치한 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입니다. 미국은 1863년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국경일로 제정하여 추수감사절을 지켜 오고 있습니다. 영국은 8월 1일 라마스 날(Lammas Day)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독일은 성 미카엘 축일(9월 29일)이 지난 후 주일을 감사절로, 스위스 개혁파 교회는 9월에 추수감사절을 지킵니다. 우리나라의 추수감사절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 全國 敎會에셔 一年에 一次式 感謝하난 日을 作定하난 問題에 對하야 徐景祚 長老가 演說하기를 我國敎會가 比前 旺盛한 것이 天父의 恩惠인즉 一 感謝日을 定하고 一年에 一次式 悅樂하며 感謝하난 거시 甚合하다 하고 其後에 梁甸伯·金興京·邦基昌·韓錫晋 諸氏가 繼續 說明하다." (죠선 예수교장로회 공의회 제4회 회의록) 1904년 9월 13일 서울 동현예배당에서 회집된 제4회 합동 공의회에서 서경조(1907년 목사 안수 받음)장로가 감사주일 제정에 대한 발언의 기록입니다. 서경조 장로의 이러한 발언으로 한국교회는 1904년 11월 11일 첫 감사절을 지켰습니다. 이후 선교사들이 날짜를 1905년 첫째 주 목요일, 1906년 11월 19일(목요일), 1908년에는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정하여 미국의 추수감사절 절기와 맞추어 11월 셋째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의 감사절의 유래는 1년 농사의 추수를 감사하는 것 뿐 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 된 것에 대한 감사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가 부흥한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감사절 날짜 역시 11월 초에 지켰습니다. 우리 교회는 몇 년 전부터 11월 첫째주일로 감사주일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2018년 추수감사는 1년 동안 하나님이 지켜주심과 교회의 부흥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감사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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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내가 만든 신(Counterfeit gods) | 2018-10-28 |
| 요즈음 한국교회에 많이 소개되는 팀 켈러( Timothy J. Keller 1950- )목사님은 미국 펜실베니아 알렌타운에서 태어나 버크넬 대학, 고든 콘웰 신학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한 목사님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를 받을 때 지도교수는 하비 콘(Harvie M. Conn) 교수로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총신에서 강의를 했던 교수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1989년 뉴욕의 맨해튼에서 리디머 장로교회를 개척합니다. 세속적 도시, 가장 인본적 도시, 돈과 부가 가치의 전부처럼 여기는 뉴욕의 금융가의 한복판에서 가장 복음적인 장로교 교회를 개척한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강조한 리디머 장로교회는 6000명이 모인 대형교회로 성장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감동하는 예배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최근 기독교 서점에 팀 켈러 목사님의 책들이 번역되어 소개 되었습니다. <센터 처치>, <탕부의 하나님>, <정의란 무엇인가?>, <고통에 답하다>, <복음과 삶>, <결혼을 말하다>, <예수, 예수> 등 20여 권의 책들이 번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 내가 만든 신- Counterfeit gods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우상숭배’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고대국가의 우상숭배는 도시마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신전에서 자기들의 신에게 제사하는 것이지만, 현대사회의 우상숭배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으로 권력, 돈, 성공을 위한 성취욕, 특히 가면을 쓰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가짜 복음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이런 우상들은 반드시 나를 배반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꼭 성취하려는 것들(돈, 명예, 권력, 사업성공, 자녀성공, 내 세우는 미모, 자신을 높이려는 교만과 지식, 남을 비난하면서까지 자신을 높이려는 욕구, 등등)에 집착하다보면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이루려는 꿈을 이루었더라도 행복이 없고 공허감과 계속되는 마음의 갈증만 증폭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참 하나님의 복음을 믿지 않으면 교회생활 하면서도 우상은 대상만 다르게 계속하여 우리 마음을 지배할 것입니다. 생명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우리를 가짜 신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입니다. 내가 만든 신, 즉 우상을 버리고 복음 안에서 자유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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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화해(和解)와 일치(一致) | 2018-10-21 |
| 초기 한국장로교 역사를 보면 1885년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의 언더우드 선교사, 1889년 호주장로교회의 데 이비드 선교사, 1892년 미국 남장로교회 소속 7인의 선발대, 1893년 캐나다 장로교회 맥켄지 선교사 등 4개 장로교회 교단이 들이어와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특히 네비우스 정책에 의하여 지역을 나누어 선교를 했습니다. (1) 서울, 평양, 황해도, 충청도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2) 호남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3) 영남은 호주 장로교 선교사, (4) 함경도, 만주는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들이 담당했습니다. 이들 선교사님들의 선교활동은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선교의 결실들이 있게 됩니다. 또한 이들 선교사님들은 각각 파송한 나라가 다르지만 1901년 9월 한국 장로교는 하나로 한다는 큰 목적으로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를 결성합니다. 처음 장로회 공의회를 결성하기까지 어려운 점도 많았습니다. 각각 파송 받은 교파와 나라와 다르더라도 선교사님들은 서로 양보하면서 한국에서 하나의 장로교단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1907년 7명의 최초 한국인 목사안수를 할 때 소속을 어느 나라 교단의 목사로 하느냐 고민이 많았습니다. 각각 자신들이 속한 선교 본부에서는 선교업적 때문에 무조건 자신들의 소속으로 안수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선교사님들은 이 문제를 놓고 2년간 기도합니다. 기록에 보면 목사안수는 1907년인데 회의는 1905년부터 시작합니다. 선교사님들은 모두가 자신들의 주장을 양보하면서 한국 장로교는 하나로 한다는 것에 의견 일치를 봅니다. 당시 선교사님들은 선교 업적을 놓고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본국의 선교 본부와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하나의 장로교단을 만들려고 노력 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일치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의 한국장로교회는 오분 사열(180개 교단)되어 서로 싸우는 꼴이 되었습니다. 초기 선교사님들의 한국장로교단은 하나로 한다는 대 명제의 큰 뜻은 사라지고 자신들만 옳다고 주장하며 분열되는 오늘의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남장로교, 북장로교, 호주장로교, 캐나다장로교 소속 선교사들이 보여준 서로 양보하면서 일치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우리 모두 조금씩 양보하며 화해하고 일치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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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경건한 침목 | 2018-10-14 |
| 토마스 아 켐피스 (Thomas A Kempis 1379~1471)는 1379년 독일의 쾰른 부근 켐펜에서 가난한 공장 직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토마스 하메르켄(Thomas Hemerken)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을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렵게 보내던 중 19살에 성직자가 되겠다고 서원하여 <공동생활 형제단>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수도원에서 보내면서 자신의 경건 위하여 고전 읽기와 기도생활에 전념했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92살까지 살면서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그는 고독 속에 홀로앉아 침묵으로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거워했으며 알려지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쓴 < 그리스도를 본받아 Imitatio Christi>라는 작품은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을 위하여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고 묵상되는 책입니다. 책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세상과 <침묵>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을 참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경건의 출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세미하기 때문에 <조용한 침묵> 없이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조용한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난주일 우리는 오후1시부터 30분만 침묵하자고 했습니다. 몇몇 분들은 조용히 앉아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과 교제하며 세상일에 침묵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여전히 수다스러운 말을 하며 침묵하지 못했습니다. 주일에 단 30분을 침묵하며 주님을 바라보는 경건을 연습하는 일, 성경을 읽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시대입니다. 왜 그리도 분주하십니까? 무엇이 그리도 우리를 수다스럽게 만듭니까? 무엇이 우리를 단 몇 분을 하나님과 교제하는 조용한 환경을 만들지 못하게 합니까? 왜 우리는 고독 속에 홀로앉아 침묵한 채 하나님과 이야기 하는 유익하고 달콤한 영혼의 상쾌함을 즐기지 못하는지요? 우리는 그렇게 자신을 나타내며 수다 떠는 일에 익숙해 있습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침묵의 시간에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수다스러움을 멈추고 분주함을 뒤로하고 주님과 교제해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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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소망의 복음 | 2018-10-07 |
| 우리나라 자살 통계를 보면 2017년 사망자 수는 12,463명으로 전년 대비 629명(-4.8%) 감소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1일 평균 자살사망자 수는 34.1명입니다. 자살률(인구 10만 명당)은 24.3명으로 전년 대비 1.3명(-5.0%) 감소하였습니다. 연령별 자살률을 살펴보면 전년 대비 모든 연령에서 감소하였으며, 특히 60세 이상이 가장 많이 감소했고 10대의 자살도 많이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11.2명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최근 최고치를 기록한 2011년도에는 15,906 명으로 31.7로 가장 높았습니다. 그 후 통계수치로 계속 낮아지고 있습니다. 월별 통계로 보면 5월이 가장 높았고 1월과 12월이 낮았습니다. 또한 자살 동기는 가정문제 (1,162명-8.9%)경제문제(2,043명-23.4%) 남녀문제(429명-3.3%) 육체적 질병 문제(2,768명 ?21.3%)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왜 이처럼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날까? 일반적으로 세상사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합니다. 자살한 사람을 입장을 변호하는 사람들은 오죽했으면 자살이라는 극단의 방법을 택했을까하며 안타까워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은 존엄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인간은 누구든지 자살이라는 극단의 방법으로 스스로 생명을 끊은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루 평균 34.1명이 자살하는 현실 앞에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은 더욱 큽니다. 절망하여 극단으로 방법으로 생명을 끊으려는 이웃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교회가 감당해야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절망한 이웃에게 다가가 소망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어야합니다. 우리 모두 절망한 이웃에게 소망을 전하는 전도자가 됩시다.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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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8광야 같은 인생 길 | 2018-09-30 |
|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면 남쪽 지역의 광야 길을 가게 됩니다. 버스로 몇 시간을 달려도 산에는 나무가 없고 풀 한포기 자리지 않는 사막지역입니다. 버스를 타고 관광을 하는 사람들은 몹시 지루해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몹시 의미 있는 지역입니다. 이곳이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광야”입니다. 출애굽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바다를 건너 광야 길로 들어선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라고 표현합니다. 미드바르는 <다바르>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드비르>라는 지성소라는 말과 어원이 같습니다. 즉 광야의 깊은 뜻은 하나님이 임재 하셔서 말씀하시는 거룩한 곳입니다. 광야는 출애굽 때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키시고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가르친 곳입니다. 광야는 일교차가 심하여 밤에는 춥고 낮에는 무더운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하나님의 큰 능력의 장소입니다. 이러한 광야 길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성경은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신8:4)라고 기록합니다. 유대인들의 경전인 <미쉬나> 에는 광야 40년을 “하나님과의 허니문 기간”으로 표현합니다. 신혼부부의 행복한 시간처럼 광야 40년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친히 보호하며 말씀하시며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 주신 곳입니다. 목이 마를 때 모세를 통하여 반석을 쳐서 물을 주시고, 먹을 음식이 없을 때 하늘에게 만나를 주시고, 고기가 먹고 싶을 때 메추라기를 주신 곳이 광야입니다. 이러한 광야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 주셨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광야”에 홀로 서서 고독함을 느낄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기적을 베푸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광야를 통하여 우리는 큰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밤에는 춥고, 낮에는 덥고,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프고 고달픈 광야 같은 인생 여정 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나, 샘물, 메추라기를 주십니다. 그러기에 광야 같은 인생길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이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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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2018-09-23 |
| 윤동주(尹東柱, 1917-1945)시인은 독립 운동가이며 기독교 민족 시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만주의 용정에서 출생하여 명동학교, 숭실학교,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중 항일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8살의 젊은 나이에 옥사 했습니다. 그가 쓴 “별 헤는 밤”, “참회록”, “십자가”, “서시”등 여러 편의 시가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중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서시(序詩)>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라는 그의 유고집에 실려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내용 보면 ‘하늘-부끄럼’, ‘바람-괴로움’, ‘별-사랑’을 중심으로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자아성찰과 바르게 살려는 의지, 그리고 절망적 현실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다짐을 보게 됩니다. 윤동주 시인의 삶을 돌아보면 그가 태어나 자란 곳의 명동촌은 어려운 일제 강점기 때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자녀들을 가르치려고 몸부림친 김약연 목사의 이상촌입니다. 명동학교를 세운 김약연 선생은 윤동주의 외숙부입니다. 외숙부가 세운 기독교 공동체인 명동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공부하며 자란 윤동주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서시>의 마지막 부분의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말은 당시 일제 강점기 민족적 절망의 상황에도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습니다 2018년 한가위 추석의 연휴를 보내며 나에게 주어진 길이 어떤 길인가? 잠시 생각해보며 “나에게 주어진 길”을 후회 없이 걸어가겠다는 다짐도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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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6죠지 뮬러의 기도 | 2018-09-16 |
| 죠지 뮬러(George Muller)는 1805년 프로이센(독일) 왕국의 크로펜스태트에서 태어나 1898년 9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 동안 5만 번 이상 기도 응답을 받은 사람입니다. 죠지 뮬러는 청소년 시절에 도박, 도둑질, 폭력으로 얼룩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1824년 19살 되던 해 아버지의 권유로 할레대학의 신학부에 입학을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때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나이 20살 때 친구의 권유로 경건한 성경연구모임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날 저녁 그는 한 경건한 사람의 기도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죠지 뮬러는 그날 저녁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강권적 회심을 경험합니다. 당시 그가 다시던 할레 대학은 17세기 독일 경건운동을 일으킨 헤르만 프랑케(A. Hernmann Francke 1663-1727)가 활동한 대학입니다. 프랑케의 경건운동은 회심 운동인데 프랑케의 회심운동을 3가지로 요약하면 1) 루터가 강조한 회심은 인간이 자신의 잘못으로부터의 스스로 뉘우치는 자기반성이 아니라 근원적 무신론자의 회심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유신론적 회심이다 2) 회심은 논리적 표현이 아니라 온 인격적 정서적 체험이다 3) 하나님에 대한 회심의 체험은 삶으로 나타나며 이웃에 대한 봉사로 표현 된다. 당시 독일 경건주의는 회심 후 삶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죠지 뮬러는 이러한 전통의 할레대학 재학 중에 회심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는 할레 대학을 졸업한 후 빈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영국으로 갑니다. 그는 영국의 브리스톨에 고아원을 세워 2천명이 넘는 고아들을 돌보았으며 평생 15만 명의 고아들에게 희망을 주었기에 <고아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는 평생 고아들을 돌보면서 영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부자들에게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기도에 대하여 “ 기도는 시작으로 부족하다. 계속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기도는 응답될 때까지 믿음으로 간청해야 된다.” 우리도 낙심하지 말고 이 땅에 복음의 회복을 교회의 개혁을 그리고 우리의 경건회복을 위하여 응답될 때까지 기도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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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5장애물 경기 | 2018-09-09 |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8.18-9.2)에서 우리나라 금(49) 은(58) 동(70) 으로 종합 2위를 했습니다. 그 가운데 100M 여자 허들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정혜림 선수가 있습니다. 한국나이로 32살에 금메달을 탔습니다. 육상선수 32살이면 포기하고 은퇴할 나이입니다. 그러나 정혜림 선수는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한 결과 금메달을 났습니다. 허들 경기는 100M를 달리는 중에 허들(장애물)을 10개를 설치하고 뛰어 넘는 경기입니다. 허들 경기는 트랙에서 앞 만 보고 달리는 100M 경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반드시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합니다. 10개의 장애물을 뛰어 넘지 않고 옆으로 달리면 실격이 됩니다. 물론 뛰어 넘다가 부딪치는 것은 허용이 됩니다. 육상 경기의 허들(장애물)경기는 마치 우리 인생의 삶과 같습니다. 누구나 인생의 삶을 살다보면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장애물을 만납니다. 장애물을 만났을 때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어떻게 하든 장애물을 극복해야 성공적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 낚시 초보인 젊은이가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낚시터에 수초가 많아 낚시하는데 방해가 되었습니다. 이때 초보 낚시꾼이 너무 수초가 방해가 된다고 물속에 들어가서 수초를 다 잘라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때 옆에 있던 나이든 노련한 낚시꾼이 말하길 젊은이 수초가 없으면 환경이 나빠져 고기들의 개체가 줄어들고 결국 우리가 낚시를 못 한다네 수초는 낚시의 방해물이 아니라 우리가 낚시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고기들의 집이라네 그러니 낚시꾼은 수초를 피하여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낚시의 장애물이 수초이지만 수초가 없으면 고기들이 없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의 길에도 장애물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장애물은 우리를 더욱 빛나게 하며 도전하게 하는 열정을 가져다줍니다. 내 앞에 장애물이 있다고 포기하지 말고 장애물을 도전하여 극복하는 멋진 인생을 삽시다. “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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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4다산이 혼자 웃는 이유 | 2018-08-19 |
| 다산(茶山) 정약용( 1762-1836) 선생은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공부를 잘했습니다. 7세에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움이 달라서라네”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라는 시를 쓸 정도였습니다. 23살 이벽 선생을 만나 서양학문을 소개받고 실학의 실사구시(實事求是-사실을 바탕으로 진리를 추구한다) 관심을 두기 시작합니다. 31살에 수원성을 축조하는 업적을 남기며 정조대왕의 총애를 받아 경기도 암행어사를 거쳐 형조참의(검찰총장)가 됩니다. 그러나 정조 대왕이 죽자 그는 반대파에 의하여 유배를 갑니다. 40살에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간 다산은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생활 하면서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을 쓰기 시작하여 유배지에서 돌아온 그는 74세에 죽기까지 500여권 책을 집필하는 방대한 작업을 했습니다. 그가 유배지에서 쓴 독소( 獨笑 -혼자 웃는다)라는 시조가 있습니다. 有粟無人食 (유속무인식) 양식 많은 집은 자식이 귀하고 多男必患飢 (다남필환기) 아들 많은 집엔 굶주림이 있으며, 達官必?愚 (달관필준우)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才者無所施 (재자무소시) 재주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고. 家室少完福 (가실소완복) 완전한 복을 갖춘 집 드물고, 至道常陵遲(지도상릉지) 도는 늘 상 쇠퇴하기 마련이며, 翁嗇子每蕩 (옹색자매탕) 아비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婦慧郞必癡(부혜랑필치)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이고. 月滿頻値雲 (월만빈치운)보름달 뜨면 구름 자주 끼고 花開風誤之 (화개풍오지)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대지. 物物盡如此 (물물진여차) 세상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獨笑無人知 (독소무인지)나 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걸. 인간은 행복의 조건을 다 가질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고 유배지에서 세상을 초월한 모습으로 혼자 웃는 다산의 마음을 엿 볼 수 있는 시입니다. 우리는 가끔 소유에 대한 행복의 조건을 초월하여 혼자 웃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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