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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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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7인의 선발대 2018-07-22
1892년 1월 미국 남장로회는 남자 선교사 3인 (테이트, 레이 놀즈, 전킨) 여성 4인 (테이트 선교사의 여동생 매티, 레이놀즈 아내 볼링, 전킨의 아내 레이번, 데이비스 양)으로 구성된 7명의 선교사를 한국에 파송합니다. 우리는 이들을 7인의 선발대라고 부릅니다. 1892년 11월 인천에 도착한 이들은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남장로회의 7인의 선발대는 1895년 2월 전주의 완산동 은송리에 예배처소를 마련하고 호남지역의 선교를 시작합니다. 수많은 핍박과 고난 속에서 1897년 7월 드디어 선교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호남 최초 5인에게 세례를 줍니다. 5인중 한 사람인 김창국은 평양의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신학에서 공부한 후 제3회 졸업생으로 목사 안수를 받아 호남지역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군산에 있는 영명학교(永明學校)와 금산에 있는 심광학교(心光學校)에서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중앙대학교의 설립자인 임영신 선생은 심광학교 재직 중에 그가 가르친 제자입니다. 김창국 목사님은 익산지역에서의 활동과 제주도에서 6년간 복음 전도, 그리고 광주의 양림교회에서 25년간 목회를 했습니다. 김창국 목사님의 장남 김현정(金顯晶)은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어 일생 목회자로 살았고 차남 김현승(金顯承)씨는 숭실대, 조선대 교수였던 시인입니다. 그가 쓴 시 “가을의 기도”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시입니다. 3남 김현택(金顯擇)씨는 전주 신흥학교 2회 졸업생으로 전북대학교 교수를 지냈고 4남 김현구(金顯求)씨는 전남여자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을 맞았습니다.
미국 남장로회의 7인의 선발대의 선교의 열정과 그들이 뿌린 복음의 씨는 전주의 신흥학교, 기전학교, 전주예수병원, 광주의 숭일학교, 수피아 여고, 목포의 정명, 영흥, 순천의 매산학교, 여수의 나병환자들을 위한 애양원등의 병원설립과 학교를 세웠고 그리고 그들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낯선 땅 조선에 온 7인의 선발대 그리고 이어 들어온 유진벨, 오웬, 포사이드, 서서평, 잉골드 선교사들 선교활동은 오늘의 호남지역의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호남의 근대화 역사 속에 활동한 선교사님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172불꽃 인생 2018-07-01
우리에게 프랑스의 신학과 과학과 수학자로 알려진 파스칼(1623-1662년)은 그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고 인간을 표현했습니다.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은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지만 이성을 가지고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파스칼 하면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유명한 말입니다. 파스칼은 어린 시절 수학의 천재로 주변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로 수학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삼각형에 대한 파스칼의 원리는 13세 때 발견하여 16세 때 원리를 발표했고 19세 때 최초로 계산기를 발명할 정도로 수학에 큰 업적을 남기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학자보다는 우리에게 신학자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수학자보다 신학자로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그가 남긴 “팡세”라는 작품 때문입니다. 팡세(Pensees-생각)는 그가 살아있을 때 글을 써서 제목을 붙인 작품이 아닙니다. 팡세는 그가 죽은 뒤 유족들이 파스칼의 팡세(생각)라는 제목으로 그의 글을 모아서 발표한 것입니다. 천재의 수학자가 어떻게 하여 신학자로 더 많이 알려졌는가? 그것은 1654년 11월 마차 사고이후 하나님 중심으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차를 타고가다 큰 사고를 당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됩니다. 그는 사고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후 그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게 됩니다. 파스칼은 그날 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잊지 않으려고 양복 안쪽에 프랑스어로 “Feu"-(불-Fire)라고 써서 지니고 다녔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다하여 이렇게 한 것입니다. 불꽃처럼 남은 삶을 살겠다는 뜻입니다. 그 후 파스칼은 불꽃처럼 열정의 삶을 살겠다는 다짐한 것처럼 실제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에 대한 열정의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의 친구들은 그가 사고로 뇌손상을 당해서 이상해 졌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의 소명에 충실한 삶을 불꽃같이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소명을 위하여 불꽃처럼 열정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생명이 붙어 있는 한 불꽃같은 열정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171한 알의 밀알 2018-06-17
로버트 토마스 (Robert J Thomas 1840-1866) 선교사는 개신교 선교사로 우리나라에서 순교한 최초의 선교사입니다. 토마스는 1840년 영국의 웨일즈 지방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63년 런던 대학교 뉴 칼리지에서 신학공부를 마친 후 고향 교회인 하노버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중국 선교사로 파송 받습니다. 하지만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아내 캐롤라인이 죽자 큰 슬픔에 잠겨 그는 선교사를 사직하고 청나라 해상세관에 통역관으로 취직합니다. 세관의 통역관으로 근무하던 어느 날 그는 조선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수난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때부터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선교의 관심을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린 것입니다. 1865년 그는 한국 선교를 위해 중국을 떠나 서해안 자자리(紫羅里)에 와서 2개월간 한국 사람을 만났고 그들에게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어느 정도 한국어를 구사할 때 즈음 그는 1866년 8월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General Sherman)의 통역관과 <성서공회 파견원>의 자격으로 승선하여 평양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그가 탄 셔먼호가 입항하려다 주민들과 마찰이 일어나 배가 불타게 되었고 토마스 선교사는 9월2일 현장에서 순교합니다. 그가 중국을 떠나면서 마지막 보고한 선교 보고서에는 “나는 상당한 분량의 책들과 성경을 가지고 갑니다. 조선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을 것을 생각하며 희망에 차 있습니다.”로 되어 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에 오면 환영받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토마스 선교사는 선교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27살의 젊은 나이에 대동강에서 순교합니다. 그는 순교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지고 온 한문성경을 전했습니다. 그가 전한 성경을 받아본 박춘권은 훗날 평양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최취량은 평양교회를 설립했고 그가 전한 성경책을 뜯어 벽지를 바른 박영식의 집은 널다리교회의 예배처소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오늘날 한국교회의 부흥을 가져 온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
170내가 만난 하나님 2018-06-10
소설가 김승옥은 1941년 12월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 1945년 귀국하여 전남 순천에서 성장, 순천사건에 아버지 사망, 순천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 1960년에 대학에 입학한 4?19세대, 세종대학교 교수 재직, 2003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투병생활을 하다. 1962년 단편 <생명연습>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동인지 <산문시대>를 창간, <건>, <환상수첩>, 1964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무진기행> 발표, 한국현대문학대사전에 소설가 김승옥을 표현하기를 “그의 소설은 감각적인 문체, 언어의 조응력, 배경과 인물의 적절한 배치, 소설적 완결성 등 소설의 구성 원리 면에서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김승옥을 극찬하는 평론가들은 30년대 천재작가 이상과 비교하여 60년대 천재작가로 평가합니다. 80년대 동아일보에 <먼지의 방>을 연재하다가 광주민주화운동의 탄압 그리고 신군부의 검열에 절필을 선언하고 20년간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년 만에 산문집을 냈는데 제목이 <내가 만난 하나님>입니다. 천재 작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가? 그는 고등학교 때 구약성경을 읽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기독교를 떠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에게 조용히 찾아와 부드럽게 손 내밀면서 하시는 말씀 나는 여호와이다, 그는 40일 금식을 하며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고, 그는 인도 선교의 소명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 그것은 체험입니다. 그 체험은 개인의 체험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형식의 만남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사건을 통하여, 어떤 사람은 성경을 통하여, 어떤 사람은 꿈을 통하여, 어떤 사람은 설교를 통하여, 어떤 사람은 길을 가다가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각각의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믿음 안에서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여러분은 그 하나님을 믿습니까? 지금 이 순간 그분의 명령에 순종합니까?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신4:29)
169핑계 2018-06-03
가수 김건모가 부른 <핑계>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를 보면 “ 내게 그런 핑계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니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혼자 남는 법을 내게 가르쳐준다며 농담처럼 진담인 듯 건넨 그 한마디 안개꽃 한 다발 속에 숨겨둔 편지엔 안녕이란 두 글자만 깊게 새겨 있어 이렇게 쉽게 니가 날 떠날 줄은 몰랐어 아무런 준비도 없는 내게 슬픈 사랑을 가르쳐 준다며…” 사랑하던 남여가 헤어지면서 떳떳하게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혼자 남는 법을 가르쳐준다며, 슬픈 사랑을 가르쳐준다며 변명하고 떠나는 사람에게 핑계 대지 말라고 외치는 노랫말입니다. <핑계>는 사전에서 “내키지 아니하는 사태를 피하거나 사실을 감추려고 방패막이가 되는 다른 일을 내세움. 잘못한 일에 대하여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구차한 변명”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솔직하지 못하고 구차한 변명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핑계와 변명을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있음에도 믿음으로 순종하지 못하고 구차한 변명을 할 때가 있습니다. 출애굽기4장에 보면 미디안들에서 양치기를 하고 있는 모세를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이제 너는 애굽으로 가서 고통 당 하는고 있는 너의 동족 히브리 사람들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으로 오라고 하십니다. 이때 모세는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여 말을 잘못하니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소서” 라고 핑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확신을 주시어 결국 애굽으로 가게 합니다. 신약 누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제자를 부르실 때에 핑계하는 자들에게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핑계하지 않고 순종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핑계하지 맙시다. 그냥 순종합시다.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능이 없는 자는 재능을 주시고, 병약한 자는 건강을 주시고, 가난한 자는 물질을 주시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하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위대한 삶을 살기 원하시면 하나님이 부르실 때 핑계하지 말고 순종하며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168강릉을 다녀오면서 2018-05-27
제2여전도회와 함께 강릉 은평 교회를 다녀왔습니다. 5월 가정의 달에 강릉을 다녀오면서 강릉이 고향인 역사속의 두 여인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한 분은 이율곡 선생의 어머니 신사임당이며 다른 한 분은 천재 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입니다. 신사임당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허난설헌은 조금은 생소한 여성입니다. 강릉 초당동에 그녀의 생가가 있습니다. 본명은 허초희(許楚姬)입니다. 강릉 초당두부의 <초당(草堂)>은 그녀의 아버지 허엽(許曄)의 호이며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許筠)은 그녀의 남동생입니다. 허난설헌은 1563년에 태어나 1989년27살에 요절한 조선 중기 여류시인입니다. 허난설헌은 15살에 자신은 원하지 않았지만 세력가 안동 김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면서부터 고난이 시작됩니다. 고부의 갈등, 남편의 무관심. 두 아들의 죽음 등 견디기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틈틈이 시를 쓰면서 어려움을 극복합니다. 그녀의 작품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게 된 것은 남동생 허균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허균은 조선에 왔던 명나라 사신이었던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누나의 시를 주어 중국에서 출판하여 극찬을 받게 됩니다. 1711년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에 의해 일본에서도 그녀의 시집이 간행되었습니다. 이처럼 허난설헌은 그녀가 죽은 후 조선보다 명나라와 일본에서 작품이 출간되어 애송되는 국제적 여류 시인이었습니다.
연약사담양양비(燕掠斜?兩兩飛) : 제비는 치자나무 비스듬히 스치듯 쌍쌍이 날고 / 낙화요란박라의(落花?亂撲羅衣) : 떨어지는 꽃은 어지러움을 안고 비단 옷을 스치는구나./ 동방극목상심처(洞房極目傷心處) : 내 눈은 동방을 향하니 마음엔 상처뿐인데 / 초록강남인미귀(草綠江南人未歸) : 풀이 파래져도 강남의 님은 돌아오지 않는구나. /
내용을 보면, 강남 갔던 제비도 돌아왔고, 봄꽃은 이미 졌고, 풀잎은 이미 자라서 파래졌다. 이처럼 긴 시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지만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니 내 마음에는 상처뿐이다.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못난 남편을 하늘같이 바라는 여인의 그리움을 표현한 시입니다. 현재의 삶이 우리에게 고난이 있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강릉을 다녀오면서 고난이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글을 쓰며 고난을 온 몸으로 견디어낸 허난설헌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167자녀 양육 2018-05-20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왜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정했을까? 아마도 계절 중 가장 활동하기 좋고 푸르른 자연을 볼 수 있는 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5일 어린이 날, 8일 어버이 날, 11일 입양의 날, 15일 스승의 날, 세계 가정의 날, 21일 부부의 날, 등 가정에 관련된 많은 행사들이 있습니다. 5월 가정의 달에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한번 쯤 돌아보길 바랍니다. 부부의 대화, 자녀 양육, 부모께 효도 등입니다. 특히 자녀양육에 대하여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맥아더 장군은 “아들을 위한 기도문”에서 < 약할 때에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용기와,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주옵소서. 생각해야 할 때에 고집을 세우지 말게 하시고, 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는 자녀를 내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게 이런 자녀를 주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자신의 아들은 이런 아들이 되었으면 하는 자신의 소원이 담긴 기도문입니다.
미국의 100달러 지폐에 초상화가 나오는 미국의 존경받는 사람 중에 하나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인생의 노년에 아들에게 교훈하고 싶어 자서전을 씁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매일 점검하며 살았던 13가지 덕목을 말합니다. < 1. 절제 2. 침묵 3. 질서 4. 결단 5. 절약 6. 근면 7. 성실 8. 정의 9. 중용 10.청결 11.평정 12.순결 13.겸손 >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13가지 덕목을 매일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신이 실천한 덕목을 공개하면서 자신의 아들에게 너도 이렇게 생활했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맥아더 장군처럼, 벤자민 프랭클린처럼 가르치고 싶을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자녀를 가르칠 때 신명기 6장 4절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라고 말합니다. 가정의 달이며 스승의 주일에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양육할까? 생각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166아버지, 어머니 2018-05-13
매년 어버이 주일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설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일까? 고민을 해봅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할 것입니다. 2018년 어버이 주일에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해 보고자 고영민 시인의 <산등성이>를 소개합니다.
- 산등성이 - 고영민
팔순의 부모님이 또 부부싸움을 한다.발단이 어찌됐든 한밤중, 아버지는 장롱에서 가끔 대소사가 있을 때
차려입던 양복을 꺼내 입는다. 내 저 답답한 할망구랑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죄 없는 방문만 걷어차고 나간다.
나는 아버지께 매달려 나가시더라도 날이 밝은 내일 아침에 나가시라 달랜다. 대문을 밀치고 / 걸어 나가는 칠흑의 어둠 속,
버스가 이미 끊긴 시골마을의 한밤, / 아버지는 이참에 아예 단단히 갈라서겠노라 큰소리다. / 나는 싸늘히 등 돌리고 앉아 있는 늙은 어머니를 다독여 좀 잡으시라고 하니, 그냥 둬라, 내가 열일곱에 시집와서 팔십 평생 네 아버지 / 집나간다고 큰소리치고는 저기 저 등성이를 넘는 것을 못봤다.
어둠 속 한참을 쫓아 내달린다.
저만치 보이는 구부정한 아버지의 뒷모습, 잰걸음을 따라
나도 가만히 걷는다. 기세가 천리를 갈듯하다.
드디어 산등성, 고요하게 잠든 숲의 정적과 뒤척이는 새들의 혼곤한 잠속. 순간 아버지가 걷던 걸음을 멈추더니
집 쪽을 향해 소리치신다. 에이, 이 못된 할망구야,
서방이 나간다면 잡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이 못된 할망구야, 평생을 뜯어먹어도 시원찮을 이 할망구,
뒤돌아 씩씩거리며 아버지는 집으로 천릿길을 내닫는다.
지그시 웃음을 물고 나는 아버지를 몰고 온다.
어머니가 켜놓은 대문 앞 전등불이 환하다. 아버지는 왜,
팔십 평생 저 낮은 산등성이 하나를 채 넘지 못할까.
아들이 묻는다. 아버지는 왜 저 산등성이 하나 못 넘느냐고.
아버지가 답한다. 가장이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안되는 거라고.
딸이 묻는다. 왜 엄마는 대문 앞까지 전등불을 켜놓느냐고.
어머니가 답한다. 남정네가 대문을 나가면 그 순간부터 기다려야 하는 거라고. 아들 딸이 묻는다.
그럴 걸 왜 싸우느냐고. 부모가 답한다. 물을 걸 물어보라고!!
165어린이날 2018-05-06
5월 5일은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날을 제정하게 된 것은 어린이를 소중히 여기고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며 어린이의 행복을 도모한다는 의미로 어린이날을 제정했습니다. 기록에 보면 어린이날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어린이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꿈을 가지고 자라나게 하자는 취지로 소파 방정환 선생과 일본 유학생 모임인 <색동회>가 주동이 되어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가진 것이 첫 어린이날의 기념 행사였습니다. 그 후 1927년에 5월 첫 주일날을 어린이 날로 정했다가 1939년 일제의 압력으로 어린이날 행사가 중단되었다가 해방 후 1946년에 5월5일에 어린이날을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그리고 1957년에 어린이 작가협회가 주관이 되어 어린이 헌장을 선포했고 1970년 대통령령으로 5월5일을 국가 공휴일로 제정하였습니다. 해마다 어린이날이 되면 어른들은 어린이를 바르고 씩씩하게 키워야함을 강조하고, 어린이에게 많은 선물 안겨 주고 재미있는 놀이로 어린이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날만 어린이를 기쁘게 해줄 것이 아니라. 항상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대하며 어린이의 행복을 위하여 우리들의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1988년에 수정 공포된 어린이 헌장(憲章) 전문을 보면 “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은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겨레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 사람으로 존중되며,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지표로 삼는다.”로 되어있습니다. 어린이 헌장의 정신은 (1) 평등정신입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어린이는 누구나 어떠한 환경이든지 차별 없이 존중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2)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꿈을 이루어 가는 성장과 성숙의 정신입니다. 어린이는 지금의 모습으로 정지된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씩씩하게 성장하며 성숙해 가는 존재입니다. 꿈을 가지고 성장하도록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배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린이날과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린이에게 꿈을 심어주며 바르고 씩씩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것을 아끼지 맙시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22:6)
164 무제(無題) 2018-04-29
이어령 교수를 말할 때, 문학 평론가, 언론인, 베스트셀러 작가, 장관, 한국의 지성이라는 별칭을 붙여 부릅니다. 반 기독교인으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딸의 암투병과 실명위기, 손녀의 ADHD 증후군의 연속된 고난 속에서 예수를 믿어 이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시 가운데 자신의 고백과 같은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4월을 보내면서 우리의 신앙을 한 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이어령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어둠의 벼랑 앞에서
내 당신을 부르면 / 기척도 없이 다가서며
“네가 거기 있었느냐”
“네가 그동안 거기 있었느냐”고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
못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
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 상처를 조금 만져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혹시 내 눈물방울이 그 위에 떨어질지라도

용서 하소서 /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 있느냐고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